오랜만에 시드니에 들어오니 모든 게 반가웠다.
늘 다니던 거리, 레스토랑, 그리고 상점들이 마치 시드니를 언제 떠나기나 했냐는 듯이 나를 반갑게 맞았다.
당장 일을 해야 했지만, 일을 새롭게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나도 비자가 4개월 정도만 남아 있는 상황이라, 현지인 일을 구하기에도 기간이 조금 애매했다.
오늘은 일 생각은 잠시 접어 두고,
반가운 시드니를 다시 만났으니 예전처럼 좀 걸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특별한 일정이 없었던 친구 한 명과 같이 시드니를 다시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곧 호주를 떠나 한국으로 가야만 하는 친구는 모든 것이 아쉬웠다.
그래서 길에서 만나는 이런 조형물조차 그냥 지나치지 않고 사진으로 남기려 했다.
물론 나 역시도 호주에 계속 있을 수는 없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비자를 1년 연장할지, 아니면 한국으로 돌아갈지 확실치 않았다.
이런 우리의 심정은 아랑곳 없이, 어찌 됐건 평일 낮의 시드니는 한가롭고 여유로웠다.
다시 시드니에 무사히 돌아온 것이 실감이 났다.
계속해서 서큘리키로 방향을 잡아 시티투어를 이어갔다.
서큘러키에는 오페라하우스를 구경하러 온 관광객과 페리를 타기 위해 모인 많은 사람이 오가는 만큼
여러 구경 거리가 많았다.
간혹 호주의 원주민의 에버리진이 그들의 전통악기인 디제리두를 연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코스프레를 한 여러 사람들을 만나 사진을 찍을 수도 있었다.
나중에 다른 여러 해외국가, 특히 유럽을 여행하면서 안 사실이지만,
저렇게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에게 사진을 찍자는 요청을 하면 금액을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당시 호주, 시드니에서는 흥쾌히 사진을 무료로 찍어주기도 했었다.
정말 본인이 즐거워서 코스프레를 했던 것일까,
아니면 시에서, 혹은 관광공사와 같은 정부부처에서 관광객을 위해 준비한 이벤트일까.
시드니는 이탈리아 나폴리,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와 함께 세계 3대 미항으로 꼽힌다.
낮에도 밤에도 시드니의 서큘러키에는 이런 아름다운 항구를 보고 느끼고 체감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페리를 타고 직접 근처로 이동을 하거나,
아니면 크루즈를 타고 근해로 나가 바다를 느끼거나 야경을 바라볼 수도 있었다.
내가 시드니에 있으면서 페리를 이동했던 적은 손에 꼽는데,
하루하루 일만 하며 지내다 보니 페리를 타고 여행을 다니다는 것이 그때는 사치처럼 느껴졌다.
페리 비용은 그렇게 비싸지 않아서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다.
오히려 트레인이나 버스를 타면 하버브릿지를 건너 육지로 돌아가야 하는 거리를
페리를 타면 저렴하면서도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다.
특히 시티쪽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비치(beach)가 북시드니에 많이 있었는데,
그중에 맨리비치 Manly Beach가 서큘러키에서 페리를 타면 10여분 만에 닿을 수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찾기도 했다.
처음 한국에서 시드니에 온 지 며칠 지나지 않아 크리스마스를 맞았는데,
나는 맨리비치에서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었다.
산타모자를 쓰고 비키니 차림에 비치발리볼을 하던 호주 사람들을 볼 수 있었는데,
한 여름에 크리스마스라니,
이 지구상에서 남반구에 있다는 것은 그동안 내가 가지고 있던 시간과 계절에 대한 개념을 완전히 바꿔 놓기 충분했다.
별 것 아니지만, 여행은 어렇게 나를 깨우고 깨우치고 있었다.
호주에 몇 없는 흐린 날씨었다.
하늘에 구름이 잔뜩 있는 날을 호주에서는 잘 만나기 힘들다.
오페라 하우스도 그 자리 그대로 잘 지내고 있었다.
평일이라 사람이 많이 없는 오페라하우스는 참 여유가 넘쳤다.
처음 오페라하우스를 두 눈으로 직접 봤었던 그날 그때처럼,
오늘 다시 만나는 시드니는 나를 흥분하게 하고 없던 힘이 샘솟게 하는 에너지가 있었다.
오랜 시간이 흘러 다시 이곳을 찾았을 때에도 오늘 이 느낌을 간직하고 있다가 꺼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보통은 시드니에 오면 서큘러키를 지나 오페라하우스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돌아가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오페라하우스 앞을 지나 계속해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엄청 큰 공원을 만날 수 있다.
오스트리안 라커리 론(Australian Rockery Lawn)이라고 하는 이곳은
티 중심에 있는 하이드파크(Hyde Park)까지 그 끝이 이어져 있는 로열보타닉 가든(Royal Botanic Garden)의 일부인데,
멀리 하버브릿지와 오페라하우스, 그리고 바다를 끼고 긴 산책로가 이어져 있어
길을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공원이다.
호주와 영국은 같은 여왕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영국 여왕의 이름을 딴 여러 건물과 도로를 만날 수 있다.
시내 중심의 QVB도 그렇고, 여기 로열보타닉 가든이 왕실의 이름을 딴 것도 그렇다.
그리고 여왕의 이름을 딴 이런 출입문도 만날 수가 있다.
지구가 타원형인 점을 감안하고도, 직선거리로는 지구에서 가장 먼 거리를 떨어져 있어도,
영국, 런던에 있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영향력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호주, 그리고 시드니의 많은 공원에서는 이런 간판을 간간히 볼 수 있었는데,
한국에서 ‘출입금지’, ‘잔디보호’, ‘잔디를 밟지 마시오’와 같은 경고성 안내문만을 봐왔던 나는
‘잔디를 밟아주세요’, ‘장미의 향을 맡아주세요’. ‘나무를 끌어안아 주세요’, ;새들과 대화를 해보세요’와 같은 안내판은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시드니를 발로 거닐면 좋은 점이,
이렇게 차로는 올 수 없는 곳을 걸으며 시드니의 다양한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아마 관광객으로 오페라하우스를 찾았다면 이런 모습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이후에도 계속된 여러 세계여행에서도 가급적이면 걷기 위해 노력했고,
그런 내 여행을 대하는 마음은 지금도 크게 변함이 없다.
시티에서 한 발 물러나 이렇게 바라보니 한결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되었다.
아동 바동 살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 했지만 맘먹은 대로 잘 되지 않을 때도 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도 그런 시간이 오면 이렇게 한 발 물러나서 바라봐야겠다, 생각했다.
데니슨 요새는 호주 식민지 시대에 죄수를 가두는 감옥의 역할을 했었다.
지금도 간혹 시드니 해변에 상어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당시 시드니 바다에는 상어가 많아서 죄수들이 쉽게 탈출할 수 없었다고 한다.
지금은 포를 설치해둔 방어기지로서 역할을 한다고 하는데,
그 역할이 충분한지는 의문이었다.
해변을 따라 공원을 걷다가 보타닉가든을 가로질러 하이드파크까지 왔다.
하이드파크에는 시드니에서 엄청 오래된 성당이 하나 있다.
St. Marry’s Cathedral 세인트 메리 대성당은 하이드파크 서쪽에 중세시대 건물로 우뚝 솟아 있다.
한글식으로 읽기에 따라
성 메리 대성당이라고도 하고
성 마리 대성당이라고도 한다.
또 영어를 읽기에 따라
세인트 메리나 세인트 마리라고도 읽기도 했다.
성당은 항시 개방이 되어 있는데, 그동안 시드니에 살면서도 가보지 않았다가 오늘 잠시 들러보기로 했다.
성당은 항상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다.
그래도 싫지는 않다.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안정을 찾고 위로를 받았을까.
저절로 겸손해지고 숙연해지는 곳이다.
그것은 나의 종교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떠나서 모든 종교를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다.
당시 호주에 있으면서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소통을 했던 창은 네이트온 메신저였다.
그전에 세이클럽(sayclub)이 있었지만 이용자가 많이 줄어 있었고,
싸이월드는 메신저 기능이 없어서 지금의 페이스북이나 인스타에 게시글을 올리는 정도와 같은 기능이었다.
수시로 대화를 하기 위해서 네이트온 메신저를 많이 사용했는데,
당시 내 네이트온 대화명이 Sydnist (Sydney + -ist)였다.
그만큼 시드니에 머물면서 시드니를 즐기고 살아가고 싶었던 소망이 있었다.
시드니를 발로 거닐면서 느꼈던 시드니는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내 기억에 생생히 남아 있다.
다시 Sydnist로 시드니를 거닐 수 있을까.
2009.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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