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그냥 호텔 근처에 있는 아무 음료수집을 찾을 목적이었다.
방콕에 왔으니 열대과일로 만든 주스나 마시면서 방콕 여행을 시작해 보자는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정말 아무렇게나 찾아간 음료수 집에서
내 인생 최고의 수박주스, 땡모반(แตงโมปั่น)을 만났다.
땡모반은 태국식 수박주스다.
그렇다고 특별한 수박주스는 아니지만
엄청 달고 시원해서 태국의 한여름 더위를 말끔히 씻어주기에 충분한 주스다.
수박주스가 그냥 수박주스지, 특별한 게 있을까,라고 처음에 생각했다.
그래서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했고, 마침 메뉴에 땡모반이 있길래 시켜보기로 했다.
메뉴 왼쪽 아래에 보인다.
Watermelon(แตงโมปั่น, 땡모반)
손님은 우리 밖에 없었다.
잠시 앉아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쉬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우리 주문을 받고,
저기 안쪽에서 음료를 만들고 계시는 사장님의 모습이 보였다.
어머니 혼자서 가게를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인상이 너무 좋고 친절하셨다.
그렇게 전달 받은 수박주스
첫 한 모금 마시는 순간, 형과 내가 동시에 감탄사를 내뱉었던 그 수박주스다.
우와, 이 머꼬?
먼데 이거?
왜 맛있노?
정말 시원하고 부드럽고 달달한 수박주스였다.
이래서 다들 땡모반, 땡모반이라고 하는구나 싶었다.
한국에서 팔아보고 싶은 수박주스, 아니 한국에 팔고 있다면 매일매일 찾아가서 마시고 싶은 그런 맛이었다.
그래서 그다음 날도 찾아갔다.
방콕 여행을 마치고 숙소로 들어가는 길에 음료를 사가지고 가서 왓 아룬 뷰를 보면서 음료를 마시자는 생각에서였다.
[국외여행/태국 Thailand] – [태국(21)] 왓아룬이 강건너 보이는 숙소, 살라아룬 Sala Arun
그런데 주인아주머니가 영어가 익숙하지 않으셔서
내가 주문한 음료를 잘 못 이해하시고, 망고주스를 내어주셨다.
형과 내가 조금 당황해하자 그제야 우리 의도를 이해하셨는지, 주문이 잘못 됐는지 물어보셨다.
그래서 땡모반이 먹고 싶어서 다시 왔다고 말씀드리고,
추가로 땡모반을 만들어주셨으면 한다고 말씀드렸다.
주인아주머니가 망고는 잘 못 나왔으니 그냥 가져가시겠다고 했지만
나와 형은 목도 마르겠다, 그냥 마시겠다고 했다.
그리고 땡모반이 만들어지는 동안 잘 못 나온 망고주스를 시원하게도 잘 마셨다.
망고주스도 신선하고 달달한 맛이었지만 땡모반만 못 하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다시 받은 땡모반을 들고 숙소로 돌아와 여유 있게 저녁시간을 즐겼다.
이대로 지나치면 맛집이 아니다.
형과 나는 3일 차 아침에도 여기를 다시 찾았다.
방콕 3일차 일정은 방콕을 떠나 파타야로 이동하는 날이었는데,
호텔 체크아웃을 하고 동네를 떠나기 전에 다시 주스 바(Juice Bar)에 들렀다.
이제는 우리 형제를 알아보는 아주머니가 반갑게 인사를 해주며 맞아주셨다.
땡모반, Again?
주문을 하지 않아도 아주머니가 먼저 음료를 추측해서 말씀을 해주셨다.
나는 ‘맛있는 땡모반 2개 주세요’라고 주문을 넣었다.
방콕을 떠나면 다시 올 수 없을 것 같다는 아쉬움에 가게 내부를 사진으로 찍어 추억을 담았다.
형과 나는 땡모반, 망고주스만 맛을 봤지만 정말 다양한 음료를 판매하는 가게였다.
더군다나 에어컨 바람도 있는 최고의 장소였다.
벽에 이쁜 그림이 그려져 있는 음료수 가게
대화 몇 마디를 나눠보니 자제분들이 출가를 해서 파타야에서 산다고 했다.
오늘 나와 우리 형이 파타야로 간다고 했더니, 그런 인연조차도 참 반갑게 대화로 맞아주시던 주인아주머니셨다.
어린 손주가 있고, 가끔 찾아온다고 하니, 벽에 있는 벽화가 그런 손주를 닮은 것 같았다.
우리의 세 번째 땡모반
3일 연속으로 먹는 땡모반이었지만 계속 먹어도 너무 맛있는 수박주스였다.
한국에서 비슷한 맛을 낼 수 있을까 궁금해서, 주스를 마시며 땡모반 만드는 방법을 찾아보기도 했다.
특제 시럽을 함께 넣어서 갈아 만들면 될 것 같기도 한데, 한국에 가면 꼭 시도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형과 나는 땡모반을 들고 마시며 길을 나섰다.
방콕을 떠나 파타야로, 다시 만나기 어려울 것 같은 땡모반 음료수 가게를 뒤로하고.
그렇게 파타야에서 1박 2일 짧은 여행을 하고, 다시 방콕을 찾았을 때,
우리의 숙소는 방콕 중심가에 위치한 호텔이었다.
그런데 형이 이 땡모반을 먹으러 가지고 해서
망설임도 없이 그렇게 우리는 네 번째 땡모반을 먹기 위해서 다시 이 가게를 찾았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멀리서 일부러 찾아온 우리 맘도 모르는지, 이 날은 이 가게가 쉬는 날이었다.
구글로 검색했을 때는 ‘영업중’으로 확인을 했는데,
아마 1인 가게다 보니 개인 사정에 따라 가게를 열고 닫고 하시는 것 같았다.
너무 아쉬웠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땡모반 한 잔을 더 마시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게 되었다.
남은 일정 동안 방콕을 여행하면서
수박주스가 눈에 보이면 사서 맛일 보고는 했지만
여기서 먹었던 땡모반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닝닝하고 싱겁고 뜨거운 수박주스였다.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늘 그렇지만 여행은 언제나 아쉬운 법이다.
땡모반은 포기하
근처 카페로 가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아쉬움을 달랬다.
하지만 씁쓸한 아메리카노는
우리 땡모반의 적수가 전혀 되지 못했다.
2022.08.15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