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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9)] 블라디보스토크역, 시베리아횡단열차 타러가기
열차에 오르고 난 뒤에 내 자리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가 있었지만,
자리에 와서도 바로 자리에 앉지를 못 하고 잠시 객실 내를 서성이고 있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 객실이 우리네 기차의 모습과는 달리, 대부분 좌석이 침대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른쪽에 보이는 테이블과 의자 좌석도, 테이블을 밑으로 놓고 의자를 평평하게 펼치면 하나의 침대가 되는 구조였다.
시베리아 횡단열차 3등석은 내게는 너무나 신기하면서도 집 같이 편안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나는 벤치처럼 가로로 길게 뻗어 있는 침대칸을 예약했었는데,
저녁에는 침대로 사용하면서도 낮에 따로 침대를 접을 필요가 없는 편리함이 있었다.
맞은편 침대를 마주 보고 있었지만 사이에 작은 테이블이 놓여 있어서 나름 아늑한 구조였다.
예약할 때 정방향, 역방향을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적당한 위치의 가로 침대석을 예약했지만
역방향으로 기차가 이동한다는 것을 알고 난 이후로도 크게 불편한 점은 없었다.
저기 내 캐리어와 크로스백, 그리고 5L 물통이 내 몸에서 떨어져 나와 멀찍이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드디어 내가 꿈꾸던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몸을 실었다는 것이 조금 실감이 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멍하니 서서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데
차례로 객실에 승객들이 들어차면서 각자의 자리를 찾아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가지런히 놓인 자두색 침대와 2층으로 오르내릴 수 있는 발 받침대, 그리고 바닥의 푸른 색깔이 대조적이었다.
내가 예약한 001호 열차는 시베리아 횡단열차 중 최신식 열차에 해당되었다.
번호에 따라 아직 에어컨이 없는 객차가 간간히 끼여 있는 객차가 있는 것도 같았다.
하지만 내가 예약한 001호 열차는 에어컨이 빵빵하게 구비되어 있었고,
입구에는 이렇게 객차 상태를 모니터로 깔끔하게 안내해주고 있었다.
아직 열차가 출발하기 전이라 에어컨이 가동되지 않아 실내 온도는 25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하지만 비에 몸과 옷이 많이 젖어 있던 상태라 적당히 따뜻한 실내 온도였다.
창 밖으로 9,288km철도노선을 기념하는 기념비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정확히 여기서부터 나도 9,288km를 달려 모스크바로 향해 가게 될 테다.
정말 설레고 흥분되는 일이다.
승객들이 더 많이 탑승하기 전에 화장실로 가서 입고 있던 속옷을 새 속옷으로 갈아입고,
비에 젖은 셔츠와 청바지를 벗고 반팔티와 반바지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준비해 간 옷걸이를 창틀에 걸고, 비에 젖은 옷가지를 걸어 두었다.
에어컨이 켜지면 제습효과도 하면서 옷이 빠르게 말라갈 것 같았다.
역에 도착할 때마다 기차에서도 도착지를 안내해 주겠지만,
러시아어를 쉽게 알아듣지 못할 것 같아 한국에서 열차 시간표를 준비해 왔다.
시간표를 꺼내 일자와 시간 별로 도착지를 구분해 뒀다.
모스크바까지 기차로 이동하면서 하루에 1번 정도 표준시간이 늘어날 예정이었다.
스마트폰이 시간을 제때 바꿔주겠지만 이렇게 수기로 체크하며 시간을 같이 확인을 했다.
그러는 사이 차장이 침대 커버와 베갯잇, 수건을 챙겨다 주어서 침대 의자를 마저 내리고 커버를 씌웠다.
1주일 간 내가 묵을 침대가 간단히 마련되었다.
내 앞자리는 아직 빈자리었는데,
승객이 타야지만 새로운 침대 커버를 내어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승객이 내리면 내리기 전에 차장이 침대 커버를 걷어가고, 새로운 승객이 타면 새로운 침대 커버를 가져다주었다.
침대 커버를 정리하는 사이
저녁 7시 10분 정시에 기차는 블라디보스토크 역을 출발해서 서서히 도심을 벗어나고 있었다.
태풍의 영향으로 비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기차 안에서 바라보는 비 내리는 풍경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블라디보스토크 도심을 벗어나는 동안 창 밖으로 아무르만(Amurskiy Zaliv)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고는 했다.
신식 기차답게, 각 좌석에는 콘센트가 마련이 되어 있었다.
구식 열차는 객차 입구에 있는 콘센트 한 두 개로 객실 사람 모두가 함께 사용을 한다고 하던데
나는 준비해 간 멀티탭을 연결해서 내 자리 주변 4~6명이 충분히 함께 사용할 수 있었다.
사전에 기념품이 있을까 해서 한국에서 찾아봤었는데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면 유리컵 기념품을 많이 산다고 했다.
나도 사전에 예약구매를 신청해뒀더니 기차가 출발하자 차장이 유리컵을 자리로 가져다주었다.
철로 만든 받침대가 함께 포함되어 있는 유리컵이었다.
나는 기차에 머무는 7일 동안 생수도 마시고, 커피와 차를 마시면서 이 컵을 참 잘 사용했다.
지금도 나는 가끔 철제 받침대에 이 유리컵을 놓고 커피와 차를 마시며 이날을 추억하고 있다.
저기 보이는 철제 받침대는 제품마다 종류가 여러 가지인데
내가 전달받은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기념 문양의 받침대는 희귀종이라서 러시아 사람들도 탐을 내는 문양이라고 했다.
차장이 내 자리로 와서 내 컵과 받침대를 한참을 구경을 하고 나서 러시아어로 뭐라고 얘기하면 웃어주었는데,
귀한 물건을 받은 것을 축하한다는 의미였던 것 같았다.
기차가 출발하고 30분쯤 지나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짐을 다 정리하고 침대 커버를 씌워 자신의 침대를 만들어둔 모습이 보였다.
그중에는 일찍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자고 싶을 때 편하고 자고 쉬는 모습이 참 여유가 있어 보였다.
나도 자리에 앉아 천천히 나의 시간을 즐기기로 했다.
나의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기차는 정해진 시간과 철로를 따라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기차 출발과 함께 켜진 에어컨 덕분에 실내가 조금씩 쾌적하게 변하고 있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_1일차]
2019.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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