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9)] 블라디보스토크역, 시베리아횡단열차 타러가기

 

 

[러시아(9)] 블라디보스토크역, 시베리아횡단열차 타러가기

국외여행/러시아 Russia






어제 왔었던 러시아-한국 우호 150주년 기념비를 다시 지나갔다.
어제보다 비가 적게 와서, 어제 미처 둘러보지 못했던 공원 이곳저곳을 자세히 둘러볼 수 있었다.
오늘은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러 가야 했기 때문에 내 캐리어와, 내 우산과 같이 공원을 찾았다.

[국외여행/러시아 Russia] – [러시아(3)] 블라디보스토크 해양공원, 스포츠 해양 도로

 

계속해서 아쉬웠던 것은 날씨였다.
비가 조금만 덜 왔거나, 아님 흐리더라도 비만 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었다.





어제 처음 블라디보스토크 시내에 도착해서 숙소로 걸어갔던 길을 반대로 걸어서
오늘은 다시 블라디보스토크 역으로 걸어서 이동을 했다.
가랑비가 조금 내리고는 있었지만, 걷는데 불편하지는 않았다.

러시아 철도 Российские Железные Дороги (РЖД 예르제데 / PZD)
러시아 연방정부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공기업이고, 소유노선의 총연장은 86,000km로
미국의 암트랙이나 인도 국영철도의 노선길이를 능가한다.

저기 보이는 러시아 철도의 약자가 처음에는 PSA로 보이기도 하고, 또 PSD로 보이기도 했는데
이래저래 찾아보니 키릴문자로 РЖД(예르제데)인 것을 알게 되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는 동안 이 예르제데 약자를 엄청 많이 보게되어서
나중에는 이 문자만 보더라도 마음이 편안해질 정도로 익숙해지게 되었다.





조금 더 길을 걸어 블라디보스토크 역으로 이동했다.
이렇게 보면 역사가 그렇게 커 보이지 않는데,
높은 건물이 아닐 뿐이지, 실내는 엄청 넓은 역사 규모를 가지고 있고
또 건물 지하(실제로는 기차를 타는 1층 승강장)까지 감안한다면 결코 작은 역이라고 할 수 없는 규모의 역이다.

역 앞 광장이 넓은 것이 90년 대 내 고향 부산역 광장이 떠오르는 모습 또한 반가운 역사였다.



역 앞에 오니 열차의 출도착을 알리는 안내판이 보였다.
지금 시간이 오후 3시 25분,
내 기차는 오후 7시 10분에 출발하는 기차였기 때문에 3시간 45분의 여유 시간이 있었다.

기차를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비 오는 날씨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딱히 할 것이 많지 않아서 조금 이르더라도 역에 가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블라디보스토크 역의 입구
아치형의 입구가 뭔가 고풍스러워 보였다.
멀리 내 캐리어와, 근처 마트에서 구매한 5L짜리 생수가 보인다.
1주일을 기차에서 보내기 위해 내 캐리어에는 한국에서 실어 온 햇반과 컵라면, 그리고 한국식 밑반찬이 가득 들어 있었다.
생수가 필요할 것 같아서 구매를 했는데, 기차에서 뜨거운 물을 무료로 제공해줬기 때문에 굳이 따로 생수를 사지 않아도 될 뻔했다.



역사 입구에 들어가니 짐 검사를 하는 장비가 나를 가장 먼저 맞아주었다.
이제는 조금 익숙한 기분으로, 누가 시키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내 짐을 기에 안으로 밀어 넣고 검사를 받았다.

짐 검사를 하는 직원이 이런 내 모습에는 별로 크게 관심을 두지 않고, 심드렁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짐 검사를 하고 역 안으로 들어와 보니
생각보다 넓은 공간이 나타나서 조금 놀랐다.
그리고 꼭 있어야 하는 매표소가 보이지 않아서 한번 더 놀랐다.





많은 사람들이 역 안에서 본인의 기차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주말이어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열차를 이용하는 것 같았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러시아어로 역사 내는 조금 소란스러었지만 나는 도통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한 채
역 가운데 멀뚱히 서서 사방을 두리번거릴 뿐이었다.





대합실을 이리저리 꼼꼼히 둘러보고 있는데
갑자기 낯이 익은 한국어 현판이 하나 보여서 발길을 멈추고 서서 가만히 현판을 구경했다.
알고 보니 블라디보스토크(블라비보스톡) 역과 부산역의 자매결연을 안내하는 현판이었다.
러시아 국영철도와 한국의 코레일(KORAIL) 로고도 확인할 수 있었다.

내 고향 부산의 부산역이 블라디보스톡 역과 자매결연을 맺은 역이었다니,
반갑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통일이 된다면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동해선을 따라 이곳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올 수 있을 텐데,
어서 빨리 내 소원 통일이 이루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합실을 가로질러 맞은편 입구에는 건물 2층으로 오가는 계단과
반대로 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다.

건물로 보면 지하 1층이지만
기차를 타기 위한 승강장이 지하 1층에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는 지상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이었다.





계단을 내려가 승강장 쪽으로 나가 보았다.
승강장이 여러 개가  있어서 조금 혼란스럽기도 해서 멀리 나가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멀지 않은 곳에 기념이 될만한 많은 건축물과 조형물이 전시되어 있었다.

옛날 석탄을 넣어 증기로 시베리아 대륙을 달렸을 증기기관차도 전시되어 있었는데,
증기기관차를 실물로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한참을 기차의 생김새를 살피며 지금의 기차와 비교해 보기도 했다.
이 기차는 2차 세계대전 때 미국이 보내온 열차라고 한다.
실제로 전쟁 중에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오가며 무기를 실어 날랐다고 한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 기차와 기념을 하기 위해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양옆으로 지금의 기차와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새롭기도 했고
당장이라도 희뿌연 증기를 내뿜으며 힘차게 철로를 박차고 나아갈 것 같은 기상을 느낄 수가 있었다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 вокзал Владивосток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시발역이자 종착역이며, 근교 도시로 이동하는 데에도 중요한 거점이 되는 역이다.
1891년 5월에 개통식이 열리고, 1983년 블라디보스토크와 우수리스크 구간을 연결하는 첫 철도가 개통되었다.
1910년~1912년에 모스크바의 야로슬라블 역이 지어지면서
블라디보스토크 역도 쌍둥이처럼 똑같은 모습으로 확장 시공되었다.
역 플랫폼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 맞서 소련과 동맹을 맺은 미국에서 보낸 열차가 서 있는데,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통해 약 8백만 톤의 무기를 실어 날랐다고 한다.





증기가관차 앞에는 러시아의 상징, 쌍두 독수리가 있는 기념비가 있는데,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모스크바, 블라디보스토크 두 시종착역 간의 거리 9,288km를 알려 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조금 후에는 나도 기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 역을 출발해 9,288km를 7일 간 달려갈 것이다.
기차에서 먹고, 자면서 7일을 보낼 생각을 하니 조금씩 기분이 들뜨면서 기대감이 커져오기 시작했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내가 타고 갈 기차의 티켓을 먼저 끊어야만 했다.
미리 예약은 했지만 바우처로는 티켓을 대신할 수가 없고, 매표소로 가서 실제 종이표, 종이 티켓으로 교환을 해야만 했다.



다시 역사 안으로 들어와 티켓을 사기 위해 매표소를 찾아갔다.
매표소는 역사의 지하 1층, 그러니까 조금 전까지 내가 있었던 승강장(플랫폼)이 있는 지상 1층에 위치해 있었다.

매표소 안내판에는 내가 타고 갈 오후 7시 10분 열차가 안내되어 있었다.

19시 10분, 모스크바행 001열차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최신 열차일수록 낮은 숫자를 부여한다.
그러니까 내가 예약한 ‘001번 열차’는 시베리아 횡단열차 중에서도 가장 최근에 번호를 부여받은 최신식 열차인 것이다.





지상 1층의 매표소 창구는 7개가 마련되어 있었는데,
번호표를 뽑고 순서대로 티켓을 받아가는 방식으로 진행이 되었다.

A매표소는 나처럼 장거리 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티켓을 구매할 수 있는 창구였다.



나는 한국에서 미리 티켓을 예약하고 바우처를 준비해 왔다.
러시아어를 전혀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바우처가 있으면 조금 더 편할 것이라 생각했다.

내 기차는 8월 16일 오후 7시 10분에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해서,
큰 문제가 없다면 8월 22일 오후 2시 13분에 모스크바에 도착하는, 6박 7일간의 여정이었다.
러시아는 나라가 좌우로 엄청 넓은 나라이기 때문에,
기차를 타고 이동을 하면서도 표준시간대(UTC)가 7번, 즉 7시간이 늘어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여정표에 나와 있는 여행 시간은 5일 19시간인데,
7시간의 시간대를 더해서 이동하기 때문에 실제 기차를 타는 시간은 6일 2시간 동안 기차를 타는 일정이었다.





매표소에도 대합실처럼 많은 사람들이 기차표를 구매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나는 저기 반대편 창가에 보이는 사람들처럼, 창가틀에 앉아서 20여 분을 기다렸다가 내 순서에 표를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내 손에 들어온 시베리아 횡단열차 티켓
바우처를 보여줬더니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어렵지 않게 티켓을 교환할 수 있었다.
티켓을 받아드니 참 많은 생각이 교차되어 스쳐갔다.
지금 이 순간, 오랫동안 꿈꿔온 나의 바람이 이루어지는 그 순간이었다.

그런데
티켓에 뭔가 엄청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러시아어가 많이 적혀 있었다.
사전에 알아본 정보로 티켓의 숫자만 겨우 읽을 수 있을 정도였다.

기차번호 : 001호
기차 출발시간 : 8월 16일 19시 10분
객차 번호 : 7호차
좌석 번호 : 27번 좌석
도착 예정시간 : 8월 22일 14시 13분

내가 예약했던 내 열차, 내 좌석이 적힌 티켓이었다.
기차 좌석은 1등석과 2등석, 그리고 3등석으로 구분이 되는데 나는 가장 많은 사람들이 있는 3등석을 예약했다.





기차에서 먹으려고 음료수를 하나 더 샀다.
저 작은 음료수가 참 달달하니 정말 맛이 좋았는데, 나는 6박 7일을 기차에 머물면서 저 작은 음료수 통을 마치
바가지처럼 이용해서 머리도 감고 세숫물도 받고 하면서 참 유용하게 잘 사용했다.



저기 멀리 벽면에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나타내는 노선도가 그려져 있었다.
이렇게 보니 그렇게 긴 노선은 아닌 것 같은데, 거의 7일을 기차를 타고 가야 한다니, 생각할수록 놀라운 철도 노선이다.

티켓팅을 하고도 기차 시간까지는 3시간 정도가 남아 있었다.
역사 안에서만 머물기에는 시간이 조금 아까워서 역 주변을 한 번 둘러보기로 했다.





잠시 비가 그친 블라디보스토크였다.
역 앞은 짙은 안개가 내려서 조금 거리가 있는 건물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시야가 가려져 있었다.
그래도 공기가 좋아서 큰 숨을 한 번 내쉴 때마다 속이 후련해지는 느낌이었다.



역 앞, 길 건너에는 레닌 동상이 세워져 있었는데
러시아 사람들에게 레닌은 정말 중요한 의미를 갖는 사람이다.
나야 그 뜻을 잘 모르지만, 그래도 러시아에 와서 레닌을 만나기는 했다.





역 밖을 나가려는데 다시 비가 내리기 사작했다.
캐리어를 들고는 이동하기가 어려워 다시 역 안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하는 수 없이 역 안을 조금 더 둘러보기로 했다.



아직 내 기차는 플랫폼이 정해지지 않아서 승강장에 나가서 기다릴 수도 없었다.
더군다나 다시 내리기 시작한 빗줄기가 조금씩 더 굵어지는 것도 같았다.



블라디보스토크 역을 짓는데 기여를 하신 분의 동판이 있었다.
동판 앞에 꽃이 놓여 있는 것이 참 인상적이었다.
딱딱하고 차가운 동판과 살아 있는 따뜻한 꽃이라니 !



역사 2층(플랫폼에서 3층)으로도 올라가 봤다.
또 다른 매표소가 있는 것 같았는데, 사람들이 많이 없는 것을 보니 인기 노선도의 티켓을 판매하는 매표소는 아닌 것 같았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중국과 몽골로 국경을 넘을 수도 있는데
그런 티켓을 파는 곳 같았다.

그리고 한편에는 짐을 맡길 수 있는 짐 보관소도 있었는데
짐 보관소가 있는 줄 알았다면 일찍 짐을 맡기고 가벼운 몸으로 좀 돌아다닐 수 있었을텐데 늦게 발견해서 아쉬웠다.
시간이 어중간해서 짐보관소는 이용하지는 않고 계속 무거운 캐리어와 5L 생명수를 꼭 붙들고 다녔다.



예전 블라디보스토크 역사를 볼 수 있는 사진도 전시되어 있었다.
나는 이런 오래된 사진이나 그림이 참 좋은데
내가 살아보지 않았던 시간과 공간도 쉽게 들여다보는 기분이 든다.





2층에서 플랫폼을 내려다봤다.
출발을 앞둔 기차에 승객들이 승차하는 모습이 보였다.
멀리 기관실에서는 엔진을 태운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내 열차 출발시간이 가까워져서 기차를 타러 왔다.
엄청나게 긴 열차가 단장을 마치고 손님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꼬리칸 쪽에서 처음 기차를 마주했는데, 이곳이 15호차였다.
얼핏 봐도 20호차는 더 될 것 같은 객실들이 끝을 모르게 이어져 있었다.



내 객차는 7호차였다.
각 객실에는 1개의 출입문이 있었고, 출입문 옆에 전자식으로 객차와 행선지를 확인할 수 있는 안내판이 있었다.



또 각 객차는 2명의 차장이 상주하면서 같이 기차여행을 하게 되는데,
따지고 보면 1명의 차장이 12시간씩 근무하면서 하루 2교대 근무를 하는 격이다.

차장이 하는 역할은 검표도 하고 침대칸의 시트를 지급하고 수거하는 일을 하면서 간간히 바닥 청소와 자리마다 쌓아둔 쓰레기를 수거하는 일도 해주셨다.
그리고 각 객차에 있는 작은 매점을 운영하는 역할도 해줬는데
이런 차장에게 잘 보인다면, 아니 차장과  조금 친해지게 된다면
차장실에만 있는 전자렌지를 양해를 구하고 이용하는 특권을 누릴 수도 있었다.

저기 사진 속에 보이는 분이 내가 이용했던 7호차의 차장 분 중 한 분이었는데,
보기에는 조금 차가워 보여도 7호차의 유일한 동양인이었던 나를 너무나도 잘 챙겨주고 돌봐주셨던 차장님이셨다.





여기 보이는 두 분의 차장님 중에 바지를 입은 친절한 차장님은 모스크바까지 나와 함께 이동을 했다.
옆에 치마를 입은 차장님은 여행 중간쯤에 다른 차장님으로 바뀌어 있었다.



기차에 오르기 위해서는 티켓과 신분증을 함께 보여줘야 하는데,
나도 여권과 티켓을 보여주고는 어렵지 않게 기차에 오를 수 있었다.

내가 러시아인이 아니다는 것을 여권을 보고 알게 된 차장이
내가 내 좌석을 제대로 찾지 못할까봐 나와 함께 객실 안까지 같이 따라 들어와서 내 자리를 안내해 주었다.
언어도 통하지 않고 조금은 무표정한 차장이 처음에는 조금 무섭고 어려웠지만 친절한 모습에 내 맘이 무장해제가 되어버렸다.
7일간의 내 기차생활이 조금은 편해지는 순간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 역이 이 열차의 출발역이다 보니
기차 내부가 말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다.

아주 깔끔한 모습이었는데, 001호차라는 신식 열차이기도 했지만
어쨌든 깨끗해서 더 맘에 드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첫 이미지였다.



7호차 27번, 내 좌석
기차 내부는 옆으로 길게 누운 침대가 1층에 2개, 2층에 2개가 놓인 4인 석 좌석과
앞 뒤로 의자를 붙이고 앉는, 의자형태의 침대가 1층에 1개, 2층에 1개가 놓은 2인 좌석이 1개 열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사진에 보이는 옆으로 길게 누운 침대의 아래쪽, 오른편 침대를 예약을 했다.
처음 예약할 때 정방향인지, 역방향인지 몰랐는데
기차가 출발해 보니 내 자리가 역방향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7일 동안 불편한 것 하나 없이 정말 편하게 잘 이용했던 내 침대, 내 자리였다.
그렇게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무사히 승차하고 어렵지 않게 내 자리를 배정받았다.

오랫동안 꿈꿔온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막 시작하려는 찰나였다.

2019.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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