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전망대를 내려와서 버스를 타고 다음 목적지로 이동을 했다.
오후가 되어도 비가 그칠 생각 없이, 오히려 비의 양이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블라디보스토크 버스가 눈에 너무 익어서 계속 시선이 갔다.
알고 보니, 우리 한국의 버스가 블라디보스토크로 수출이 되어서 시내를 누비고 있었다.
비가 와서 몸과 마음이 많이 젖었지만, 그래도 반가운 마음에 버스에 계속 시선이 갔다.
비 오는 중에도 저녁을 먹기 위해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식당을 찾아갔다.
러시아에 오면 꼭 가보고 싶었던 곳,
바로 북한 식당, 평양관이었다.
러시아가 북한의 우호국이기 때문에,
내가 여행을 갔던 2019년에는 블라디보스토크와 모스크바에 북한 식당이 운영 중이었다.
한국에서도 평양냉면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여럿 있지만,
그래도 북한 사람이 운영하는 북한 식당에 가서 평양냉면을 먹어 보는 경험은 한국에서 할 수 없었다.
비가 오는 궂은 날씨였지만 버스를 갈아타고 북한 식당, 평양관을 찾아갔다.
러시아어로 평양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멀리 장군의 모습을 한 석상이 서 있었는데,
입구에 서서 들어갈까 말까 조금은 망설이게 되는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한국 사람이 북한 식당에 가서 북한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음식을 주문해서 먹는다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겁이 많은 나로서는 정말로 큰 용기가 필요했던 순간이었다.
러시아어를 모두 읽을 수는 없었지만 영업시간이 오후 12시부터 저녁(오전)12시까지로 적혀 있었다.
평양관 Пхеньян
블라디보스토크에 위치한 3개의 북한식당 중 한 곳이다.
(평양관, 고려관, 금강산)
실제 북한 사람에 의해 운영이 되고 있고, 한국 사람도 특별한 제재 없이 방문할 수 있다.
블라디보스토크 코로나 호텔 1층에 위치해 있고, 호텔과 다른 식당으로 가는 입구를 이용해야 한다.
정통 평양 냉면과 신선로와 같은 북한식 음식을 맛볼 수 있다.
다른 한국 식당과 달리 김치, 깍두기와 같은 반찬은 따로 주문을 해야 한다.
저녁이면 북한식 공연도 볼 수 있다.
주소 : Ulitsa Verkhneportovaya, 68В, Vladivostok, Primorsky Krai
교통 : 버스 62번, 미니버스 57번/63번 (중앙광장에서 약 30분 소요)
영업시간 : 12 : 00 ~ 24 : 00
입구를 지나 호텔 건물 안으로 발을 옮겼다.
러시아식 건물의 호텔이었지만, 평양관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별도로 만들어 뒀는데,
밖에서 보던 것과 다르게, 입구 위로 한국식 기와지붕을 형상화해 둬서 왠지 친숙했다.
문이 활짝 열려 있어, 어서오라고 나에게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블라디보스토크 북한식당, 평양관 입장하기]
가게 안으로 들어갔는데 의외로 한국 손님이 많이 있었다.
물론 혼자 식당을 찾은 사람은 나 혼자였지만,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멀리 식당 직원분들이 보였다.
아마도, 아니 분명 저분들은 북한 사람들이 맞는 것 같았다.
복장과 머리 스타일을 봐서도 그런 것 같다고 혼자 확신을 가졌다.
맞은편 의자에 젖은 옷과 가방을 잠시 걸어두고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물기를 말렸다.
저녁을 먹는 동안에 잠시라도 옷을 말리고 싶었다.
조금 있으니 직원분이 메뉴판을 가져다주셨다.
처음 북한 사람을 대면하는 순간이었는데,
잔뜩 기대하고 긴장한 나와 달리 북한 사람은 나를 대수롭지 않게 대하고 무관심하게 메뉴판을 두고 자리를 떠났다.
먼저 음료, 주류 메뉴를 천천히 살폈다.
위스키, 맥주, 보드카와 같은 술이 있었고 탄산음료, 커피와 같은 음료도 있었다.
평양소주가 궁금해서 한참을 찾았는데,
메뉴판에서는 평양소주가 보이지 않았다.
선물로 평양소주가 좋을 것 같아서, 이따 음식을 주문할 때 직원분에게 평양소주가 있냐고 물었는데
주문하면 가져다주시겠다고 하셨다.
나는 2병을 주문을 했는데, 잠시 후에 음식을 가지고 오신 직원 분이 평양소주가 다 팔려서
평양에서 다시 소주를 받기 까기 2주가량이 걸린다고 하셨다.
선물로 평양소주를 가져가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음식 메뉴판을 보는데,
한눈에 봐도 너무나 익숙한 메뉴들이 나타났다.
김치찌개와 된장찌개 같은 찌개류와 복음, 탕요리, 그리고 감자전, 김치전과 같은 전 종류도 많이 있었다.
북한 사람들도 내가 평소가 즐겨 먹는 한식을 같이 먹고 있구나 싶어서 애잔한 마음이 생겼다.
먹는 음식을 보니, 북한과 남한 사람은 같은 민족이 맞았다.
그러면서 한글로 음식을 표현하는 방식이 남한과 달라서 신기하면서도 재밌었다.
무침과 샐러드 종료를 랭요리라고 표현을 했고,
찜, 구이, 볶음 요리는 온요리라고 표현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이 모든 것이 한글로 적혀 있어서 반갑고, 또 모두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메인 요리로 평양냉면을 시켰다.
그리고 곁들여 먹을 수 있는 꼬치를 같이 주문을 했다.
사이드로는 간단한 나물과 땅콩이 나왔는데, 김치를 먹고 싶을 경우 추가로 주문을 해야 했지만
냉면 한 그릇 먹는데 딱히 김치가 필요해 보이지 않아 곁들여 먹을 꼬치 요리만 추가를 했다.
북한 사람과 대화를 하다니 !!
비록 메뉴를 주문하는 짧은 몇 마디였지만 나는 처음으로 북한 사람과 얘기를 나누었다.
정말 드라마, 영화에서 보던 북한 말투 그대로였다.
평양냉면이 먼저 준비가 되었다.
한국에서 평양냉면을 먹어본 기억이 있는데, 첫 기억은 뭔가 밍밍하고 냉랭한 것이,
한국의 냉면과는 맛과 향이 전혀 다른 그런 맛이었다.
무슨 맛으로 먹나 싶은 맛이 내가 맛본 평양냉면의 맛이었는데,
이상한 것이, 평양냉면을 다 먹고 일어서려 할 때 계속 생각이 나는 맛이 또 평양냉면이었다.
그래서 눈앞에 있는 ‘진짜’ 평양냉면의 맛이 어떨지 정말 궁금했었다.
음식을 앞에 두고 젓가락은 들지 않고 핸드폰을 들어 사진만 요리조리 찍고 있으니
북한 직원분이 테이블로 다가와서 한 소리를 거드셨다.
아니, 음식은 드시지도 않고 사진만 찍으시는 겁네까?
면에만 살짝 식초를 곁들여 드시면 됩니다 !
시간이 조금 지나서 정확한 단어와 문장은 기억나지 않지만,
무심한 듯 저런 뜻으로 나에게 핀잔을 주듯 어서 음식을 들어라고 얘기해 주었다.
그 말투가 왠지 무심해 보였지만 식기(?) 전에 음식을 빨리 먹으라는 배려 같이 느껴졌다.
직원분의 추천대로, 식초와 겨자는 최소한 면에 적시듯이 부어 먹고,
반 이상을 먹고 나서 식초와 겨자를 육수에 조금 더 부어 먹었다.
같이 나온 닭고기 꼬치 요리
마늘과 양파, 피망을 같이 구워서 고소하게 면과 함께 먹기 좋았다.
북한 사람이 만들어 준 나의 첫 식사 한 끼
나는 냉면뿐만 아니라 반찬도 하나 남기지 않고 싹 다 깨끗이 먹어 치웠다.
직접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만큼 맛있게 잘 먹었다는 얘기를 대신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한국에서 여행 중에 먹으려고 간식을 몇 개 준비해 갔었는데,
마침 가방에 마이쮸 딸기맛, 사과맛이 들어 있길래 테이블에 꺼내 두었다가
나중에 계산을 할 때 직원분들에게 드시라고 건네고 왔다.
마이쮸를 줬을 때 남한 사탕이라고 받지 않으면 어떡하지, 혼나거나 소리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막상 마이쮸를 건네었을 때 옅은 미소를 보이며 감사합니다,라는 얘기를 해주었다.
별거 아니지만 북한 사람과 교감을 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식당을 나서면서 정말 맛있게 잘 먹었다는 인사를 여러 번 했다.
평양냉면 맛을 떠나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교감을 하게 해 준 식당이고 북한 사람들이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8월 15일, 광복절이었다.
그들에게도, 우리에게도 모두 의미가 있는 날에 이곳을 찾게 되어 나에게는 더 의미가 있었다.
그러니 도저히 맛이 없을 수가 없던 평양냉면이었다.
나는 나중에 방문하게 될 모스크바에도 북한 식당이 있다는 것을 찾아보고는
모스크바에 방문했을 때 다시 한번 북한식당을 방문해 보기로 했다.
2019.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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