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홍콩을 찾으러 가는 길
어느 공원 벤치에서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 두 분이 마주 앉아 장기를 두고 계셨다.
나도 장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옆에 잠시 서서 구경을 하는데,
우리네 장기와 마판과 말이 비슷해 보이면서도 이동방식이나 규칙이 조금은 다르게 보였다.
바닥에 담배꽁초만 조금 안 보였으면 더 즐거운 구경이 되었을 텐데, 조금 아쉬웠다.
홍콩은 인구밀도가 정말 높은 도시이다.
그렇다 보니 건물이 들어설 공간도 참 많이 부족한 곳인데,
그런 홍콩의 도심 한 가운데에 이런 공원이 있다는 것이 참 고마웠다.
MTR 야우마테이 역 근처에 있는 미도카페(미도식당, Mido Cafe)를 찾았다.
홍콩에 오면 한 번 가보고 싶었는데, 이전에 친구와 왔을 때는 가보지 못했었다가 어머니와 이번에 홍콩여행길에 들려보기로 했다.
한자로 미도식당(美都食堂)이라고 적어둔 이름이 맘에 들었다.
아름다운 도시의 식당이라니,
마치 아름다운 홍콩의 식당이라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이곳을 방문해보고 싶었던 이유는
내 오랜 영웅, 홍콩배우 주윤발의 오랜 단골집이기 때문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5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하면서도 오래된 홍콩의 멋과 풍경을 간직하고 있는 식당이기 때문이었다.
미도카페 美都食堂 (미도식당, Mido Cafe)
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홍콩의 대표 차찬탱이다.
차찬탱은 홍콩의 가장 보편적인 식당의 형태 중 하나로, 차(茶)와 음료를 마시며 간단한 식사를 하는 식당을 얘기한다.
대부분의 홍콩 식당이 차찬탱 형태이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 홍콩 차찬탱 식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
미도카페는 홍콩 드라마와 영화의 배경으로 많이 등장했다.
낡은 외관이 이곳의 상징이고, 내부 인테리어 역시 오래된 홍콩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원앙차로 불리는 ‘Tea Mixed with Coffee’를 마시며
‘Papaya Bread & Butter’, ‘폭찹 라이스’와 식사를 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영업시간 : 오전 11시 30분 ~ 오후 8시 30분 / 수요일 휴무
홍콩 주민들에게 인기가 있는 현지인 맛집이라고 알고 갔는데,
건물 1층을 들어가 보니, 내가 제대로 찾아온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가게가 한산하고 허전해 보였다.
아니면 브레이크 타임이 있는 것인가 싶어 두리번 거리고 있는데,
저기 안쪽에서 직원분이 2층으로 올라가라고 손짓으로 안내해 주었다.
그러면 그렇지,
2층으로 올라가니 넓은 실내에 차찬탱을 즐기고 있는 홍콩 사람들이 가득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제대로 식당을 찾아 왔다는 안도감과 드디어 나도 차와 음식을 맛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동시에 몰려왔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영어로된 메뉴를 찾을 수가 없었다.
홍콩 현지인의 인기 맛집이다 보니 모두 한자로만 적혀 있어서 읽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그때,
한 여직원이 우리 테이블로 다가오더니 반가운 한국어로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여행 오셨나 봐요?
미도카페이서 근무하는 여직원이었는데,
한국어가 유창했다.
반가운 미소로 어머니가 한국분인지를 물었다.
저는 홍콩 사람이에요.
그런데 베이징 대학교에서 한국어를 전공했어요.
한국에도 조금 살았어요
이렇게 반가울 수가.
한국어를 전공한 홍콩사람이란다.
외국인이 어려워하는 한국어 받침과 연음 발음이 너무 유창해서
국적을 얘기하지 않았다면 누가봐도 한국사람이라고 했을 정도였다.
어머니와 내가 너무 놀라며, 한국어를 너무 유창하게 해서 한국사람 같다는 얘기를 하자
부끄러운 듯 웃으며 슬며시 영어로 된 메뉴를 가져다주었다.
외국에서 한국사람이 아닌데 한국어를 잘하는 사람을 만나면 이렇게 반갑다.
며칠 전 빅토리아 피크에서 만난 홍콩사람도 그랬고,
여기 미도카페에서 만난 한국어가 유창한 홍콩사람도 그랬다.
이방인에게도 참 친절하고 미소가 너무나 아름운 분이셨다.
요즘에도 어머니와 가끔 홍콩에서 만난 이 두 사람을 추억하며 얘기하고는 한다.
어머니와 내가 주문한 차와 음식이 나왔다.
나는 원앙차(Tea with Coffee)와 파파야 브레드 앤 버터(Papaya Bread & Butter)를 주문했다.
어머니는 원앙차와 잼이 있는 빵을 주문했다.
홍콩스러운 테이블 위에 놓인 홍콩의 차찬탱 음료와 음식이 먹음직스러웠다.
카페 안의 인테리어와 참 잘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잠시 스쳐가는 이방인이지만
잠시나마 홍콩 사람들 속에 섞여 이렇게 홍콩을 경험하는 것이 너무 신기하고 재밌었다.
컵이 참 이쁘고 독특해서 하나 챙겨 오고 싶을 정도였다.
원앙차의 맛은 커피에 홍차를 섞은 것 같은 맛이었는데
커피의 쓴 맛을 없애면서도 홍차의 쓴맛은 살짝 묻어나면서 단 맛이 났다.
너무 달지 않아서 빵과 함께 먹으며 조합이 참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어가 너무나 유창했던 북경대 한국어과 출신의 미도카페 홍콩 여직원
어머니에게 너무 친절하게 대해주셨고 불편한 게 없는지 오며 가며 물어봐 주셨다.
여행이 이런 것 같다.
나는 유명 여행지를 가면 그곳의 풍경과 날씨와 냄새를 기억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이렇게 오래, 그리고 깊이 기억에 남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친절하고 밝았던 그 사람이 오래 기억이 남고,
그 모습이 홍콩에서의 여행에 대한 이미지로 깊이 각인되었다.
내가 경험한 미도카페는
복잡한 의복을 갖춰 입거나
예의를 차리지 않아도 되는 곳이었다.
정말 우리 집 근처에 있는 차찬탱 식당이다 보니
홍콩 현지인들도 편하게 와서 차와 식사를 즐기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저렴하게 맛있는 식사를 한다는 것도 좋았지만
이렇게 홍콩 주민의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점이 정말 좋았다.
이런 점이
미도카페를 가고 싶어했던 이유였기도 했다.
식당을 나서면서 어머니가 한국어가 유창한 홍콩 직원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일이 바빠 조금은 귀찮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내색 없이,
마지막까지 친절하게 어머니와 나에게 인사를 건네주었다.
그런 홍콩 직원에게 어머니는 한국의 정(情)까지 전달하고 싶으셨던 것 같다.
한국에 놀러 오면 연락하세요.
엄마가 맛있는 밥 만들어 줄게요!
직원이 그 마음을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크게 웃으면서 답을 해줬다.
꼭 갈게요 한국.
다시 가고 싶어요!
한국에 가면 맛있는 밥 만들어 주세요!!
2017.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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