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에서 갑자기 운전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내가 일하는 일식 레스토랑은 규모가 상당히 큰 편에 속했는데,
키친만 해도 구이(테판),튀김,스시,롤 섹션(section)으로 구분되어 있었고,
음료를 위한 별도의 바 섹션(Bar Section)이 따로 있을 만큼 큰 규모의 레스토랑이었다.
시드시 시티에만 이름이 조금씩 다른 지점이 5곳이 있어 꽤 유명했다.
매일 레스토랑 오픈 전에
시드니 피쉬마켓(Fish Market)에 들러 그날 사용할 생선을 구매했었는데,
다양한 종류의 생선을 구매할 수 있다는 장점과 매일 신선한 생선을 제공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
그런데 매일 아침 운전을 해서 피쉬마켓을 다녀오는 직원이 갑자기 그만두는 바람에
피쉬마켓에 갈 인원이 마땅치 않았는데 마침 내가 운전이 가능하기도 했
레스토랑 입장에서는 임시로 나에게 피쉬마켓을 다녀오는 일을 시키기에 적합했을 것이다.
당시 나는 한국 운전면허증만 가지고 있었고 호주의 면허증이 없었는데,
호주에서는 한국 면허증과 여권이 있으면 호주 면허증을 발급해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혹시나 해서 챙겨온 한국 운전면허증이 도움이 되었다.
내 친구들은 한국에 면허증을 두고 오는 바람에 호주 면허증을 급히 받을 수가 없었다.
정확히 면허증은 아니고,공인서류를 발급해서 면허증에 준하는 증빙을 해준다는 것인데,
신청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고,또 빠르게 공증을 받을 수 있었다.
신청은 시드니 주재 한국 영사관에서 할 수 있었다.
일이 없었던 친구 한 명과 함께 호주 운전면허 ‘공증’을 받기 위해 한국영사관에 가기로 했다.
한국 영사관은 시드니 시티, QVB근처에 있어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평일 낮이라 사람이 많이 없었다.
필요한 서류를 작성하고,한국 운전면허증과 여권을 보여주고 앉아서 기다렸다.
해외에서 한국 영사관을 방문할 줄은 정말 생각하지도 않았다.
일반 여행객이나 해외 거주자가 영사관,대사관을 들른다는 것은 여권을 분실했거나 하는 특급 이슈일 때나 일어나는 일로 생각했다.
호주에 있으면서도 한국사람과 한국어로 공무를 본다는 것이 신기했다.
한국식의 빨리 빨리 공무가 익숙한 나는 오랜만에 해외에서 김치찌개 정식을 먹는 것 같은 반가움과 향수가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리고 한국인으로서 한국정부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심리적 안전감도 들었다.
기다리는 동안 TV를 보고 있었는데,
오래 전 재밌게 봤던 ‘공동경비구역JSA’영화가 나오고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 앉아 있었지만 나에게는 이 마저도 한국이었다.
면허 공증은 정말 오래 기다리지 않고 증명서 형태로 받을 수 있었는데
이것으로 호주에서 운전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뭔가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 같아 설레었다.
영사관을 나와 집으로 바로 가기는 싫고, 친구와 시티를 조금 걸었다.
근처에 있는 애플 스토어(Apple Store)에 들려서 사지도 않을 애플 제품을 체험하기도 했다.
애플 스토어는 언제 들러도직원들이 참 친절했다.
그들 눈에는 내가 동양의 어느 나라 키작은 이방인으로 보일텐데
항상 따뜻한 환대를 받는 것 같아서 방문하는 동안 참 기분이 좋았다.
애플 스토어는 주변의 고풍스런 다른 건물과 다르게,건물이 참 현대적이고 이쁘기도 했다.
그리고 스토어 안에서 이런 풍경을 구경할 수 있다는 점도 참 매력적이었는데,.
통유리 하나로 세상과 구분을 짓고 나는 투명한 건물 안에서 바깥 사람들과 오래된 풍경을 구경할 수 있었다.
여행을 하면서 한 곳에 오래 머문다는 것은 이러한 풍경도 일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얘기한다.
나는 지금도 어디가로 여행을 가면 어떻게든 일상에 빠져드는 여행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단 몇 시간짜리 경유지를 방문하는 일이 있더라도최대한 그곳의 일상이 되어보려 애쓴다.
내가 떠나간 곳,또 나를 맞아준 곳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일상이 되어 기억과 추억으로 남긴다.
호주에 머무는 동안 내가 보고 경험한 것은,
짧은 시간, 낯선 곳에서도 일상을 경험하게 하는 방법들이었다.
여행이 나에게 알려주는 아주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모습이기도 했다.
애플 스토어 맞은편에는 하이드파크(Hide Park)가 있는데,
시드니 도심 한 가운데에 이렇게 큰 공원이 있다는 것이 항상 부럽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공원 가운데 큰 체스판과 말들을 볼 수 있었는데, 친구와실제로 시간을 내어 체스를 한 번 두기로 했다.
장기에 익숙한 나는 친구에게 쉽게 지고 말았지만,
커다란 말을 들어서 옮기는게 마치 이상한나라의 엘리스 처럼, 내가 크나 큰 세상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큰 말을 직접 들어 성금성금 옮겨 가는 것이 재밌었다.
호주 아저씨가 내가 아닌 내 친구에게 훈수를 두는 바람에 졌다고 투덜거렸다.
내 말에 친구는 언제든 나의 도전을 다시 받아주겠다며 웃어 넘겼다.
짧았지만 체스를 두면서 많이 웃었고,또 시드니의 하루를 일상이 되어 즐겼다.
2009.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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