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를 떠나기 전에 근교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그동안 시티 투어만, 그것도 걸어서 갈 수 있을 정도의 거리만을 오가다가
트레인을 타고 다 같이 근교로 다녀오기로 했다.
목적지는 블루마운틴(Blue Mountains)으로 정했는데,
호주는 한국과 달리 산악지대가 많지 않아 등산 혹은 트래킹을 가기 위해서는 시티에서 멀리 이동을 해야 했다.
센트럴역(Central Station)에서 트레인을 타고 2시간을 이동해 카툼바(Katoomba) 역에 내려 이동하기로 했다.
시드니에 온 이후 가장 멀리 떠나는 여행이었다.
설레기도 하고 낯선 곳으로 가는 조금의 두려움도 있었다.
새벽 일찍 나선 여행길이었지만 혹시나 내릴 곳을 지나칠까 봐 아무도 자지 않고 지나가는 역을 하나하나 헤아렸다.
카툼바역에 내려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산악지역에 와서 그런지 시드니보다 기온이 낮았고 습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비가 내리고 있어서 이동을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을 해야 할 정도였다.
시디니 날씨만을 보고 당연히 날씨가 맑을 것이라는 생각에 우산을 챙겨 오지 않았다.
원래는 카툼바역에서 블루마운틴 정상까지 걸어서 이동을 하려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일찍 출발해서 역에 도착했고, 트래킹 시간을 감안하여 넉넉히 산을 즐기고 오려했다.
하지만 우산도 우비도 없었던 터에, 비를 맞으면서 트래킹을 할 수는 없었다.
할 수 없이 트래킹은 포기하고, 투어버스를 타고 산 중턱이나 정상으로 가기로 했다.
투어 버스는 2층 버스를 개조해서 만들었다.
영국의 오래된 버스를 가져온 것일까
버스를 보면서도 계속해서 버스를 탈지, 아니면 날씨의 운을 믿어볼지 망설였는데,
비가 내리다가도 그치고, 또다시 내리다가 멈추기를 반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하늘이 맑아지는 것 같기도 해서,
잠깐 내리는 비를 맞으면서 걸을지 말지를 고민하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어디 한 곳 이동하지 못하고 시간을 지체했다.
하지만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어, 결국 버스를 타고 산을 오르기로 했다.
다행히 하늘이 개는 것이 보여서, 지체된 시간만큼 산 중턱까지 올라 거기서부터 정상까지 트래킹을 하기로 했다.
버스는 우리 일행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우리가 타자마자 출발을 했다.
버스 안은 나무의자로 개조가 되어 있었고 앞쪽과 뒤쪽 의자의 배열이 달랐다.
우리는 마주 보고 2명씩 앉아서 서로 사진을 찍으며 오늘을 기념했다.
10년이 훌쩍 지난 후 오늘을 기억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이런 사진 덕분이다.
남는 것은 사진밖에 없다는 말이 이럴 때 실감이 된다.
버스를 타고 블루마운틴을 오르는 중간에 하늘이 더 맑게 개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우리는 더 고민하지 않고 산 중턱에 내려서 걸어서 정상까지 걸어서 오르기도 했다.
우리가 버스를 내린 곳은 고든폭포(Gordon Falls) 전망대라는 곳이었다.
그리고 최종 목적지인 에코포인트(Echo Point)까지 트래킹 코스를 확인했는데 그렇게 멀지 않은 거리었다.
블루마운틴의 유명한 체크포인트인 세자매봉(Three Sisters)을 목적지로 두고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했다.
비가 내린 다음이라 제주도의 천지연 같은 폭포를 기대했었는데 물줄기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장엄하게 펼쳐진 블루마운틴의 깊은 계곡으로 물이 떨어지는 것은 장관이었다.
우리 모두가 저 사진의 친구와 같은 기분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동안 시드니에 와서 일자리를 구하느라 애가 달았고, 일을 하면서도 하루하루 쫓기듯 생활하다가
오늘 시티를 벗어나 자연에 묻힌 기분은 우리의 심신을 달래기에 충분했다.
곧 시드니를 떠나야 하는 일말의 불안과 막연함도 오늘은 모두 잊고 이 모습을 즐기기로 했다.
비가 와서 산길은 미끄러웠지만 함께 하는 친구가 있다는 것 때문에 든든하고 힘이 났다.
다행히 트래킹 코스는 잘 갖춰져 있어 어렵지 않게 길을 갈 수 있었다.
오히려 버스를 타고 산 중턱까지 오는 바람에 큰 오르막도 없어서,
대화를 하면서 걸어도 힘들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트래킹 도중 큰 바위를 많이 만날 수 있었는데 중간중간 여러 사람이 다녀간 흔적들을 볼 수 있어서 반가웠다.
이러한 모습을 만날 때마다 하나하나 사진을 함께 찍었다.
블루마운틴은 250만㎢나 되는 넓은 산악지대인데,
산에 넓게 분포하고 있는 유칼리툽스 잎에서 나오는 알코올 성분이 빛에 반사되어 푸르게 보인다고 해서 블루마운틴으로 불린다고 한다. (무슨 말이지?)
걷는 동안 정말 맑은 물과 많은 유칼리툽스 나무를 본 것 같다.
코알라도 있을 법도 한데, 자연에서의 코알라는 만나지 못했다.
2시간을 조금 안 되게 걸었을까?
오늘 목적지인 에코포인트(Echo Point)에 도착을 했다.
여기에 휴식을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고, 또 보고 싶었던 세자매봉 전망을 위한 전망대도 마련되어 있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세자매봉을 전망하고 있었다.
날씨가 완전히 개지는 않아서 저 멀리 안개를 뒤로하고 세자매봉을 전망할 수 있었다.
세자매봉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도 안내되어 있었는데, 이야기가 재밌으면서도 슬펐다.
우리가 트레인을 타고 도착했던 이곳 카툼바 지역에 오래전 카툼바라는 부족이 있었다.
카툼바족의 한 마법사에게는 아름다운 세 딸이 있었는데,
이 세자매는 그들 부족이 아닌 다른 부족의 남자들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카툼바족은 본인의 부족 외 다른 부족과의 결혼을 금지하고 있었는데,
이에 세자매와 사랑에 빠진 이웃 부족의 남자들은 전쟁을 해서라도 세자매를 데려오기로 하
카툼바족과 전쟁을 하게 되었다.
마법사는 딸들을 이곳 절벽으로 데려와 전쟁이 끝나면 마법을 풀어주기로 하고 세자매를 돌로 변하게 했는데
아쉽게 마법사는 전쟁에서 죽고 말았고 세자매는 영원히 마법에서 풀려날 수 없었다.
부족과 아버지의 규율을 어긴 세 딸의 고집이었을까?
아니면 여인의 아름다움에 눈이 먼, 이웃 부족 남자들의 과한 사랑이 불러온 비극일까?
그것도 아니면 세 딸을 너무나 사랑했던 아버지의 부정? 혹은 가도한 품 안의 자식?
혹은 전쟁을 해서라도 딸들과 사랑을 이어가고 싶었지만, 전쟁으로는 사랑을 쟁취할 수 없다는 교훈일까?
어느 하나 해피엔딩이 될 수 없는 슬픈 이야기인 것 같아서
세자매봉을 바라보며 세 딸들이 아버지를 원망했을지, 감사해했을지 헤아려보려 했다.
하지만 답을 낼 수는 없었다.
우리도 기념 사긴을 찍고, 살만한 게 있을까 해서 기념품 가게로 이동을 했다.
이곳에서 산길을 오면서 만나지 못했던 코알라를 만났다.
깨끗한 유칼리툽스 잎만 먹는다는 코알라.
호주에 있는 동안 꼭 한번 만나고 싶었다.
위를 봤더니 캥거루와 에뮤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순간 너무 사실적이어서 깜짝 놀랐다.
코알라와 노는 동안 캥거루와 에뮤가 자기도 잊지 말라고 시위하는 것 같았다.
산을 내려올 때에는 아직 간간히 비가 내리고 있어서,
정상에서 오전에 샀던 투어버스 패스를 이용해 버스를 타고 산을 내려왔다.
다시 카툼바역에 내려오니 투어 버스가 2층만 있는 게 아니라, 기차 같이 2개의 버스를 직렬로 연결한 버스도 있었다.
시티에서는 자주 봤었지만 투어 버스로 만나니 신기했다.
아직 한국에서는 보지 못 한 버스여서 더 신기했다.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날씨가 궂어지는 것이 보였다.
그래도 비가 잠시 그치는 찰나에 트래킹도 하고 정상에 올라 세자매봉도 구경을 한 것 같아 다행이었다.
날씨가 아주 맑았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래도 한 번 오기도 힘든 블루마운틴 투어를 다치지 않고 잘 끝낼 수 있어서 만족했다.
2009.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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