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 화려하게 빛이 나던 숙소 건너편의 클럽 네온사인이
아침이 되어서는 흔적도 없이 종적을 감추었다.
클럽이 많이 있는 최고 핫플 골목에 위치한 숙소였지만
잠을 자는 동안 전혀 시끄럽지 않을 정도로 방음이 잘 되는 숙소였다.
리버풀에서 3일을 묵었던 숙소는
가로로 긴 하나의 방에 침대가 가지런히 놓여 있는 숙소였다.
위치도 정말 좋았지만
남자 세 명이서 사용하기에 충분히 넓고 편안한 숙소였다.
오늘은 정든 리버풀을 떠나 다시 런던으로 돌아가기로 한 날이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후다닥 짐을 다시 꾸리는데
머문 곳을 떠난다는 아쉬음에 짐을 다 싸고도 쉽게 방을 떠나지 못 했다.
현관부터 욕실, 그리고 내 침대까지
내 흔적이 묻은 곳을 눈으로 손으로 또 사진으로 더듬으며 아쉬움을 달랬다.
오전 7시에 리버풀 라임스트리트 역에서 출발하는 기차를 타기로 했다.
같이 여행 중인 일행은 나까지 총 3명이었는데,
그중 나 혼자만이 기차를 이용해서 런던으로 가기로 했다.
나머지 일행 2명은 기차보다는 버스를 타고 싶은 생각에
8시에 출발하는 런던행 버스를 타기로 해서
숙소에 그들을 남겨 놓고 나혼자 먼저 길을 나섰다.
기차를 이용하면 약 2시간 만에 런던에 도착할 수 있지만 가격이 비싸고,
버스를 이용하면 가격은 저렴하지만 런던까지 약 5시간 45분 정도 소요되는 단점이 있다.
꼭 가격이나 시간이 아니더라도
서로 선호하는 교통편이 달랐기 때문에 런던까지 이동하는 교통편을 나눠서 이동하기로 했다.
나는 시간을 아끼고 싶었고
그들은 여행을 왔으니 시간에 쫓기고 싶어하지 않았다.
나는 런던에 빨리 가서 혼자서라도 구경하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았다.
금요일의 이른 새벽이었다.
역으로 가는 리버풀 거리가 한산했지만,
밤을 새워서 놀았는지 귀가하는 젊은 무리들이 거리를 걷는 것이 보였다.
순간 내 대학교 새내기적 추억들이 많이 떠오르기도 했다.
조금은 나의 과거를 닮은 모습이 정겨웠다.
어젯밤까지 리버풀에서 3일 밤을 보냈다.
이제 눈을 감고서도 걸어서 역까지 쉽게 갈 수 있을 정도로 리버풀 지리가 익숙해졌다.
여행은 늘 이렇게 익숙해지면 길을 떠나라고 나를 재촉하는데
여행을 하면 익숙함에 속아 나태해지지 않게 늘 나를 둘러보게 된다.
이른 아침이라 역은 한산했지만
그래도 도시를 이동하려는 많은 사람들이 역에 나와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전 7시, 리버풀 라임스트리트 역을 출발하는 버진 트래인(Virgin Trains)
나는 어딜 가나 기차여행을 선호하는 편이다.
온라인으로 표를 예약을 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기차에 오를 수 있었다.
[영국 기차 예매]
기차가 참 날렵하게 생겼다.
붉은색과 노란색의 조합도 나쁘지 않았다.
런던에 가서 뭘 할지 차근차근 계획을 다시 되짚어 봤다.
버스로 이동하는 일행이 런던에 도착할 때까지 4시간가량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2년 전 처음 런던에 혼자 왔을 때 인상적이었던 장소를 추억 삼아 돌아볼 계획이었다.
우리네 KTX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기차였다.
영국의 넓은 들판을 기차로 빠르게 달리는 경험은 언제 해도 참 설레는 여행 중 하나다.
혹시나 잘못된 기차에 오르지는 않는지,
기차번호(Train Number)와 출발시간, 그리고 목적지를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기차에 오르고 나니,
남겨진 리버풀이 창 밖으로 보였다.
나는 풍경을 감상하기 위해 일부러 창가를 예약했다.
런던으로 가는 동안 최대한 잠을 자지 않고 창 밖 풍경이 보고 싶었다.
영국에 머무는 동안
지난 옥스퍼드 여행과 이번 리버풀을 오가며 기차를 이용했는데
영국의 기차는 약속시간을 참 잘 지키는 편이었다.
이번 런던행 기차도 정시에 정확히 리버풀을 출발했다.
기차에서 간단하게 먹기 위해 샌드위치와 커피를 챙겨 왔다.
어쩔 수 없이 마주 보고 앉는 좌석에 앉았지만, 맞은편 사람이 기차가 출발하자마자 잠을 자길래
조용히 기차에서 아침을 챙겨 먹었다.
한국과는 다르게 산이 없고 넓은 평지와 나지막한 언덕이 고작이었다.
그래서 기치가 달리는 동안 먼 곳의 풍경까지 볼 수 있었다.
앞 승객과 마주 보고 앉았지만
2시간 동안 이동하면서 따로 얘기를 나누지는 않았다.
서로 각자의 시간에 충실하며 런던으로 이동했다.
캐리어(suitcase)를 놓을 수 있는 장소가 있었는데,
런던이 유럽의 다른 국가들 보다는 안전하다는 생각에
기차를 이용하면서 아무렇게나 캐리어를 짐칸에 놓고 기차를 이용했다.
다행히 리버풀을 갈 때,
그리고 런던으로 다시 돌아올 때도 내 캐리어는 별 탈 없이 짐칸에 잘 있어주었다.
새벽 기차라 이용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는데,
이렇게 좌석옆 통로 쪽으로 캐리어를 두고 이동하는 손님도 있었다.
2시간여를 신나게 달려 정확히 예고했던 시간에 런던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시 만난 런던이라 익숙하면서도 반가웠고, 돌아올 수 있어서 기뻤다.
사람들이 나가는 방향을 따라 플랫폼을 걸어서 이동했다.
런던 유스턴(Euston) 역에 도착하고 나서 바로 역을 벗어나지 않고
역 내를 돌아다니며 분실물 보관소가 있는지를 먼저 찾았다.
일행 중 한 명이 런던에서 리버풀로 갈 때 노트북이 든 가방을 기차에 두고 내렸기 때문에
혹시나 분실물이 보관되어 있을지 확인을 하기 위해서였다.
리버풀 숙소의 직원이 전화로 확인을 해주기도 했지만,
보관소에 가방을 보관하고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안내소 쪽을 우선 찾아서 분실물 보관소가 있는지를 확인했다.
물품 보관소 쪽에 가면 분실물 보관소가 함께 있을 것이라는 안내를 받은 후에,
안내 받은 분실물 보관소 쪽으로 이동을 했다.
12번에서 18번 플랫폼으로 가는 쪽에 가면 물품 보관소(Left luggage)와 분실물 보관소(Lost property)가 있었다.
유스턴 역이 엄청 큰 역이었지만 플랫폼 번호로 찾아가니 어렵지 않게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자, 이제는 3일 전 분실물로 접수된 가방과 노트북이 있는지를 확인해야 할 차례였다.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하나, 막막하기는 했지만,
그리고 실제 가방이 있을지 긴가민가하기도 했지만, 직접 가서 물어볼 수 밖에 없었다.
잃어버린 가방이 있는지 찾아봐 주셨던 직원분
분실물이 생각보다 많은지,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차례로 분실물을 찾아가고 있었다.
접수를 도와주시는 한 분과,
보관 창고에 가서 물건을 가져다주시는 분 한 분, 이렇게 두 분이 근무를 하고 계셨다.
3일 전에 런던에서 리버풀로 가는 기차에서 짐을 놓고 내렸다고 하니,
기차 시간과 열차번호를 우선 확인하셨는데 다행히 내가 바우처를 가지고 있어서 빠르게 확인이 가능했다.
그리고 그날 그 기차에서 분실된 가방이 하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데 바로 가방을 꺼내 주시지 않으시고, 확인에 필요한 질문을 하셨다.
1. 가방형태가 어떤 것인가? 백팩이요.
2. 무슨 색깔인가? 검은색이요.
3. 가방의 브랜드는 무엇인가요? 에버라스트요(Everlast).
4. 가방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나요? 노트북이요.
5. 노트북은 무슨 브랜드인가요? 레노버요(Lenovo). /실제로는 HP인데 이때 브랜드를 잘 못 얘기했다.
질문이 하나하나 올 때마다
버스를 타고 런던으로 오고 있던, 이 백팩의 주인공인 일행 중 한 명에게 전화로 질문을 하고 답을 받아야 했다.
시간이 지체되기는 했지만, 내가 여행객인 것을 알고 있던 직원분이 이런 나의 모습을 천천히 그리고 친절하게 기다려 주셨다.
그런데 노트북 브랜드에서 잠시 혼란이 있어서 다른 브랜드를 얘기를 했던 것이
짧게 끝날 수도 있었던 분실물 찾기가 쉽게 끝나지 않고, 추가 질문이 이어지게 했다.
노트북 주인이었던 일행이 잠시 브랜드가 헷갈려 잘 못 얘기했던 것이,
이곳 직원분들에게도 확신이 들이 않았던 것 같다.
6. 가방에 노트북 말고 다른 물건은 없나요? 책이 한권 있어요.
7. 책 제목은 무엇인가요? ….
가방에 책이 한 권 들어 있었는데, 그 책 제목을 묻는 것이었다.
한글로 적힌 책일 텐데, 책은 보여주지 않고 책 제목이 뭔지 나에게 물어봤었다.
나는 일행에게 통화로 전해 들은 대로, 한국어로 책 제목을 얘기했는데,
당연히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으로 직원분이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래서 핸드폰으로 책을 검색해서 책의 그림과 표지에 씌인 제목을 직원에게 보여줬다.
책의 제목이 무엇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제야 직원이 웃으며 가방의 주인이 맞는 것 같다며 가방을 꺼내주셨다.
그렇게 다시 찾은, 노트북과 책이 든 검은색 백팩
이렇게 가방을 찾고 보니, 왜 그렇게 질문을 많이 했는지 이해도 되었다.
잘 못된 사람에게 다른 물건을 건네었을 때 문제가 더 커질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분실된 물건을 찾으니 참 고맙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
가방을 찾을 때 일정 금액의 비용이 들었다.
분실된 가방의 가치에 비하면 적은 비용이었다.
가방을 다시 찾았다는 것을 일행들에게 알리고,
이제 정말 나 혼자의 런던여행을 위해 역을 벗어났다.
캐리어와 백팩까지 있었기 때문에, 우선 런던 숙소에 들려 짐을 좀 맡겨 두고 가벼운 몸으로 런던을 둘러보기로 했다.
이제는 익숙해진 런던의 지하철을 타고 숙소가 있는 장소로 이동을 했다.
2018.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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