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화폐를 침대에 펼쳐봤다.
금액이 너무 커서 계산할 때 조금 헷갈리기는 하지만 익숙해지면 또 크게 불편하지는 않다.
계산할 때 보면,
금액 전체를 다 얘기할 때도 있지만
보통 천 단위는 버리고, 앞자리만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
125,000동(VND)이면,
125(One Hundred Twenty Five 혹은 One, Twenty Five)이렇게 얘기한다.
익숙해지면 큰 단위에 당황하지 않아도 된다.
소나기가 그치고, 낮잠도 30분 정도 잤다.
체력을 다시 보충하고 하노이 관광을 위해 호텔 밖으로 나갔다.
내 방 528호
카드키에 호텔 외관 사진이 붙어 있었다.
Army Hotel
호텔 입구가 넓어서 시원시원한 느낌이 드는 아미호텔이다.
방금까지 소나기가, 그것도 참 많은 비가 내려서
도로가 많이 젖어 있었다.
길을 걷는데 길에 고인 물이 오토바이와 차량이 지날 때 튀기도 했고
나뭇가지와 잎에 맺혀 있던 빗물이 떨어서 맞기도 했다.
가랑비가 조금 오는 듯했는데 그래도 우산 없이 다녀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런데 더운 날씨에 갑자기 습해지는 바람에 조금만 걸어도 땀이 나고 더웠다.
호텔에서 25분 정도를 걸어서 문묘(Văn Miếu, 文廟)에 도착했다.
여기 문묘에서 북쪽으로 이동을 하며 하노이를 관광하자는 생각이었다.
비가 내린 직후였지만 이미 많은 관광객이 문묘를 방문하고 있었다.
문묘 Văn Miếu, 文廟
한자 뜻으로는 ‘글(文)의 사당(廟)’이라는 뜻이다.
1070년, 공자와 그의 제자들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문묘 가장 안쪽에 공자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이 있다.
1076년 베트남 최초의 대학으로 사용되어 많은 유학자를 양성했다.
경내 좌우에 거북머리 대좌를 한 82개 진사제명비가 있고,
여기에 1442년부터 1787년까지 과거에 합격한 사람의 명단이 새겨져 있다.
가운데 연못은 베트남 100,000동(VND) 화폐 뒷그림으로 사용되어 유명하다.
시간 : 07:30 ~ 17 : 00
입장료 : 30,000동(*24년 10월 기준, 70,000동)
정문을 보니 1000년을 넘긴 건물이라는 것이 바로 느껴졌다.
고풍스럽고 위엄이 있는 문묘의 정문이었다.
저기 가운데 정문은 과거에는 왕이 오가던 길이었고,
일반인은 좌우의 작은 문으로 드나들었다고 한다.
정문의 왼편에 입장권을 구매할 수 있는 매표소가 있었다.
창가에 닫힘(Close) 팻말이 있어 당황했었는데, 반대편 쪽으로 돌아가니 직원이 있어서 입장권을 살 수 있었다.
입장권 가격은 30,000동(VND, 약 1,500원 / 22년 10월 기준)
24년 10월에 문묘를 다시 방문했는데 입장권 가격이 70,000동(약 3,500원)으로 많이 상승되어 있었다.
문묘 정문
이끼를 제거하고 조금 깔끔하게 보이게 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이끼가 쌓이고 쌓인 모습 그대로를 관광객들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비가 자주오고 더운 날씨에
정비를 해도 다시 또 금방 이끼가 생길 것 같기도 했다.
정문을 들어서 뒤를 돌아보니 계속해서 관광객들이 문묘로 입장하고 있었다.
입구 기둥에 한자로 적힌 글씨가 보였는데, 지금은 베트남어를 표기할 때 로마자를 사용하지만
예전 베트남 역시 한자문화권이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정문울 지나 문묘에 들어서니 눈 앞에 넓은 정원이 나타났다.
커다란 나무가 그늘을 만들고 사이사이 키 작은 나무와 잔디가 시원한 모습을 만들어 줬다.
가운데 블록을 깔아 길을 내었는데, 가운데를 높이고 좌우를 낮춰 비가 내려도 배수가 잘 되게 해 뒀다.
정원을 직접 둘러볼 수는 없고 블록길을 걸어 장원을 가로질러 가도록 해뒀다.
이 정원에서 잠시 앉아 쉬어갈 수 있다면 문묘를 더 잘 느껴볼 수 있을 텐데, 아쉬웠다.
정원을 가로질러 새로운 문에 도착했다.
다음 정원으로 이어지는 통로였다.
우렁찬 나무에 가려져 시야가 가려져 있었지만 정원이 꽤 넓게 펼쳐져 있었다.
정원을 질러 세로로 길게 늘어선 길과 문을 지나 문묘 깊숙한 곳까지 가게 만들어 놨다.
2번째 정원은 앞선 정원보다는 좁고 짧은 정원이었다.
저기 앞에 새로운 문, ‘규문각(奎文閣, Khuê Văn Các, 쿠에반깍)’이 보였다.
문묘의 가운데에 위치한 문이다.
문묘 공간이 엄청 넓지 않기 때문에 정문을 지나면 금방 만날 수 있다.
첫 느낌은 중국 어느 고궁에나 있을 법한 출입문 같아 보이기도 했다.
규문각을 지나면 이런 작은 못을 만날 수 있다.
문묘 중앙에 있는 연못인데, 이곳이 예전에는 사당, 또 대학으로 사용되었던 공간임을 생각하면
휴식과 사색을 즐길 수 있는 참 좋은 공간인 것 같다.
물은 초록색으로 조금 탁한 모습인데, 엄청 깨끗한 모습은 아니었다.
그래도 물에 비친 하늘과 건물, 나무의 모습이 이뻤다.
문묘는 관광객들에게도 유명한 명소이지만 베트남 사람들도 참 많이 찾는 공간인 것 같았다.
사진에 보이는 이 모습이 참 유명한데,
바로 베트남 100,000동 화폐의 뒷배경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가지고 있던 10만 동 화폐를 들고 같이 사진을 찍어봤다.
규문각과 연못, 주변의 나무까지도 정교하게 화폐에 그려져 있었다.
신기했다.
여러 관광객들도 주변에서 나처럼 10만동 화폐를 들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대로 크기를 맞춰, 10만동 화폐를 앞뒤로 옮겨가며 사진을 찍었다.
그림 한 폭처럼 보이는 문묘와 규문각, 그리고 연못이었다.
연못 주변으로 회랑(回廊)이 있었는데, 회랑 안에는 거북이 석상에 비석을 얹은 조형물이 많았다.
약 340년 간 베트남 과거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고 한다.
총 1,307명의 이름과 생년월일, 그리고 업적이 적혀 있다고 하는데 나는 도저히 읽을 수가 없었다.
글이 있어도 한자는 읽기 힘들었다.
베트남에서는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문묘를 많이 찾는다고 하는데
여기 거북이 비석을 만지면 좋은 기운을 얻는다고 한다.
규문각을 바라보고 연못 반대편으로 가서 다시 연못을 사진에 담았다.
규문각 때문인지, 이곳에서 바라보는 문묘의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뒤에 있는 우거진 나무도 연못의 멋을 더했다.
연못을 지나 문묘의 가장 안쪽에 있는 문에 닿았다.
공자를 모시고 있는 사당으로 가는 문이다.
베트남 전통복장을 입은 사람들이 사진촬영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전통복장과 전통의 문묘가 참 잘 어울렸다.
사당 마당에 들어서니, 마당 중앙에 있는 큰 향로가 눈에 띄었다.
비가 와서 사용을 하지 않는 건지, 아니면 원래 사용을 하지 않는 향로인지는 모르겠지만
거대한 향로가 이곳이 사당임을 분명히 말해주고 있었다.
마당 주변으로 여러 삼각대(이젤)가 보였는데
비가 오기 전까지 전시를 목적으로 사용이 되었던 것 같다.
비가 와서 급히 작품들을 치워둔 것 같았다.
마당 안쪽으로 들어가 사당을 등지고 다시 마당을 바라봤다.
다양한 행사를 치르기에 참 좋은 마당 같았다.
비가 오지 않았다면, 어쩌면 더 활기찬 문묘를 즐겼을지도 모른다.
공자를 모신 사당으로 들어섰다.
앞서 지나온 여러 정원과 연못이 만들어 내는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어디선가 짙은 향 냄새가 나기도 했다.
사당 입구에 있는 봉황 청동상이다.
가슴과 다리 부분이 사람들 손길로 반들반들 색이 바래 있는 모습이었다.
청동을 만지면 복이 온다는 얘기 때문에 관광객들이 봉황을 만지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도 봉황을 만지면 세계 평화와 건강, 그리고 복을 기원했다.
청동에 한자로 뭐라 써둔 것이 보였는데 정확한 뜻은 알지 못했다.
봉황을 지나 사당 본당으로 들어섰다.
작은 회랑으로 길을 만들어 뒤쪽 사당으로 갈 수 있게 해놨다.
이동하는데 문 턱이 엄청 높아 발을 높이 들어 사당을 넘어야 했다.
사당에 들어서니 향 냄새가 강하게 느껴졌다.
또 적막이 흐르는 것이 경건한 느낌이 들게 했다.
한 편에 공자(孔子)와 제상이 보였다.
우리네 절이나 사당에 있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베트남의 향은 우리네 모기향처럼 둥글게 말려 있는 모습으로 타고 있었다.
우리는 곧게 세워 향을 태우는데 베트남은 둥글게 말아서 향을 태운다.
향 냄새는 우리와 비슷했다.
사당 안쪽, 깊은 곳에는 금을 입힌 거북이 상이 놓여 있었다.
글씨가 있는 현판에 이 거북이의 뜻과 의미가 적힌 줄 알고 주의 깊게 읽었는데
단순히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는지만 표기해 두고 있었다.
따로 정보를 찾아보니
베트남에서는 거북이가 신성한 동물로 여겨진단다.
그래서 앞서 문묘 연못 옆에 거북이 상이 많았고, 여기 사당에도 금을 입힌 거북이 상이 놓여 있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날씨가 엄청 덥고, 또 비가 온 뒤라 엄청 습했는데
사당 안은 높고 넓고 또 길쭉해서 바람이 참 잘 통해 시원했다.
그리고 이렇게 큰 선풍기를 중간중간 ‘강’으로 틀어두어서 바람이 잘 통했다.
선풍기가 제 역할을 하니 참 시원하고, 감사했다.
사람이 많은 문묘였지만 공자 사당까지는 사람들이 많이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혼잡함을 피해 여기 사당에서 꽤 시간을 보내며 쉬었다.
사당을 넘나드는 문턱이 이렇게나 높게 되어 있었다.
내 무릎을 넘어 허벅지까지 턱이 올라온 모습이라 이렇게 옆으로 다리를 높이 들어 이동해야 했다.
문턱이 닳아 있는 모습이 재밌었다.
공자 사당을 들렀다 나왔는데
앞마당 삼각대 위에 여러 사진이 다시 걸려 있었다.
비가 내리는 동안 잠시 옮겨뒀던 사진을 다시 꺼내둔 것 같았다.
어떤 행사를 얘기하는 것 같았는데 사진속 이야기를 읽을 수는 없었지만
붉은색의 색감이 참 예쁜 사진들이 많았다.
문묘를 나가려는데 아까 사진을 촬영하던 무리를 다시 만났다.
이곳 모델이신가..?
참 오래 사진을 찍고 있었다.
Loi Ra, 출구(Exit)
출구를 나타내는 안내판을 한자가 가득 적힌 비석 모양으로 표시를 해뒀다.
나는 왜 이 표지판을 보고 광개토대왕릉비가 생각이 났을까?
문묘를 나가면서까지 참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떠날 수 있었다.
조용한 문묘를 벗어나자
다시 베트남, 하노이가 나타났다.
무엇보다 수 많은 오토바이 행렬이 내 앞을 가로막고 나를 또 어지럽게 만들었다.
어서 다음 목적지를 찾아 이동을 해야 했다.
2022.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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