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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광장을 나와 이제 숙소로 돌아가야만 했다.
모스크바를 떠나는 비행시간이 다가오고 있어서, 짐을 챙기고 숙소 체크아웃을 해야 할 시간이었다.
모스크바 광장 앞 오호트니 랴트 쇼핑몰(Охотный Ряд)지하통로를 이용해 길을 건넜다.
붉은광장을 오가며 봤던 카페가 오늘따라 얄밉게 더 여유로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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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의회 건물인 것 같았는데
직접 이렇게 보니 엄청 웅장하고 멋있는 건물이었다.
건물 입구 중앙에 러시아를 상징하는 휘장이 금빛으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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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멀리서 바라보는 볼쇼이 극장
이제 이 극장의 모습도 마지막이었다.
건물을 돌아 숙소로 가서 짐을 챙기고 나와 지하철을 타면 당분간 다시 만나기는 힘들 것이다.
여러모로 볼쇼이 극장에서 볼쇼이 발레단이 공연하는 차이코프스키의 호두까기 인형 공연을 보지 못 한 것이 계속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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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입구의 거대한 문
모르고 방문한다면 일반 주민이 사는 주택의 입구처럼 보이는 곳이다.
처음 이곳을 방문했을 때 숙소 입구가 아닌 줄 알고 4층 계단을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세 번을 오르내렸던 기억도
이제는 다 추억이 되었다.
그런 나와 마주친 유럽 여행객이 나를 보고 친절하게 숙소 입구를 안내해주던 모습도
역시나 이제 다 추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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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아웃 시간은 오후 2시까지였다.
오후 2시를 불과 1분 남겨두고 체크아웃을 한 후 숙소를 벗어났다.
얼마 전 도쿄에 방문했다가 우연히 장만했던 손목시계가 이번 여행에서 나의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주었다.
(이 시계는 지금까지도 내가 가장 애용하는 시계다.)
[도쿄 놋토Knot 시계]
저녁 6시 30분 비행기를 타야 했기 때문에 시간은 넉넉했다.
시내에서 점심을 게을리 먹고 공항으로 이동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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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가는 날까지 모스크바는 정말로 아름다웠다.
오후 햇살을 받은 모스크바 건물들이 형형색색 빛을 바라며 떠나는 나를 다시 한번 유혹했다.
시내 중심가에 숙소가 있어서 조금만 벗어나도 명품관들이 즐비한 모스크바 거리였다.
티파티(Tiffany&Co.) 매장은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만날 수 있다는 점도 참 신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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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내를 오가며 봐뒀던 식당 케첩(Ketch up)이라는 곳에서 모스크바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하기로 했다.
식당 이름이 재밌기도 했고, 몇 번 오가는 동안 이곳에 사람이 늘 많았었기 때문에
믿고 먹는 맛집 같은 느낌이 들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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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어로 테라스에 자리를 주시면 감사하겠다고 했고
직원 분이 어렵게 알아들으시고는 친절히 나를 테라스 한쪽 빈자리로 안내해 주셨다.
참 친절한 직원분이셨다.
테라스에는 이미 많은 손님들이 식사를 하며 일행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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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은 이미 훌쩍 넘긴 시간이었지만
홀에도 많은 손님들이 늦은 점심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식사는 대부분 끝이 나고 음료와 술을 마시며 일행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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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여기저기를 구경하는 동안 직원분이 메뉴판을 가져다주셨다.
다행히 영어메뉴판을 주셔서 어렵지 않게 먹고 싶은 메뉴를 주문할 수 있었다.
나는 페일에일(American Pale Ale, APA) 생맥주 한잔과 계란이 있는 비프스테이크(Beefsteak with egg)를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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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을 하고 금방 맥주가 먼저 도착했다.
여행 중에 마시는, 그것도 한낮에 느긋하게 마시는 맥주는 언제나 옳다.
맥주 한 모금을 마시니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 같기도 하고
주변에서 들리는 모든 소리가 아름답게만 들렸다.
천천히 이번 러시아에서 보낸 시간을 되돌아봤다.
처음으로 1주일간 기차를 타고 9,288km를 달렸던 기억과 모스크바에서의 시간들이 정말 소중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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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지 않아 도착한 스테이크
보통 스테이크는 넓은 접시에 담아내어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것 같은데
여기에는 깊이가 있는 그릇에 담아내어 주었다.
칼로 자르는 것이 조금은 번거로웠지만 크게 어렵지 않았다.
덕분에 색다르게 스테이크를 맛볼 수 있었다.
반숙한 계란과 스테이크는 버섯구이와 오이구이와 함께 먹어 느끼함이 전혀 없었다.
모스크바에서 마지막으로 먹기에 아주 적절한 식사였다.
정말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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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말 고기 한점, 야채 하나 남기지 않고 싹 다 긁어먹었다.
사진을 찍고 저기 마지막 남은 오이 한조각도 입가심 겸 먹어 치웠는데,
짭짤하지만 스테이크의 느끼함을 잡아 준 저 맛을 낼 수 있는 오이 조리법을 나는 아직도 찾지 못해 이렇게 사진으로나마 추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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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레스토랑 케첩에는 많은 손님들이 찾고 있었다.
점심이 지나도 간단하게 요기를 하기 위해 햄버거 종류를 주문하거나
맥주와 간단한 안주를 주문해서 대화를 나누는 손님이 많이 보였다.
이래저래 참 잘 찾은 식당인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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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식사값으로 990루블을 지불했다. (약 15,000원)
서비스 비용 10%가 붙은 가격인데 그래도 다른 유럽에 비하면 물가가 엄청 저렴한 편이었다.
이 가격에 이 구성으로 엄청난 맛을 볼 수 있어서 더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모스크바 길거리 공연]
밥을 먹고 캐리어를 챙겨 식당을 나서는데
식당 바로 맞은편에서 한낮의 버스킹 공연이 진행되고 있었다.
배는 부르고, 공항까지의 시간은 넉넉해서 나도 잠시 서서 공연을 구경했다.
모스크바는 마지막까지 나에게 이런 멋진 공연을 선물로 남겨주는 참 즐거운 도시였다.
곡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나는 악사들에게 감사의 박수를 남겨두고 공항으로 이동을 했다.
2019.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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