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횡단열차 6일 차
아침 8시 40분에 튜멘(Тюмень, Tyumen) 역에 도착했다.
보통은 역에 도착하면 역 이름이 적힌 건물이 보여야 역에 도착했다는 것을 실감할텐데
이번 튜멘 역에서는 매표소(кассовый зал, 까쏘비이 잘)가 눈에 들어왔다.
20분을 쉬어 간다고 해서 기차 밖으로 잠시 나와 봤다.
상쾌한 아침 공기가 싫지 않았다.
기차여행 6일째를 맞이한 오늘은 러시아의 우랄산맥을넘는 일정인데
그렇게되면 기차로 아시아대륙을 지나 유럽대륙으로 들어서게된다.
산맥을 넘어가야 하기 때문에,
평소 하루에 10개 ~ 15개 역을 지나쳤던 것과 달리, 오늘은 5개 역만 지나가게 되어 있었다.
역에서 다음 역까지 짧게는 3시간, 길게는 6시간을 달려야 하는 일정이었다.
기차 출발 전에 다시 자리로 와서 창 밖을 내다보는데
멀리 높은 건물이 시선에 들어왔다.
러시아가 한 때 공산국가였던적이 있었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내 느낌으로는, 영상으로 보던 북한의 모습이 러시아에서 간간이 보이는 것 같았다.
저기 멀리 보이는 건물과 풍경도 나에게 충분히 그런 분위기를 느끼게 했다
기차는 역을 떠나 다시 시베리아 벌판을 달리기 시작했다.
하늘에 구름이 두둥실 떠다녔지만 아주 청명하고 맑은 날씨였다.
4일째 나와 같이 여행 중인 ‘바샤’
기차에서의 시간이 조금은 무료해 보였다.
말이 통하면 나와 더 많은 얘기를 나눴을 텐데, 나도 바샤도 서로가 조금씩은 서툴고 어려웠다.
오후 1시 36분,
우랄산맥 초입의 도시, 예카테린부르크(Екатеринбург, Yekaterinburg/Ekaterinburg) 역에 도착을 했다.
예카테린부르크는 러시아 중부 도시지만 우랄산맥 지역에서는 가장 번화한 도시로 꼽힌다.
가장 먼저 보였던 건 역시나 매점이었다.
그리고 익숙한 한국의 라면, 도시락 컵라면은 러시아 어디를 가나 만날 수가 있어서 참 반가웠다.
기차 안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내 옆자리로 와서 도시락 컵라면을 먹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한국과 다른 점은 러시아 사람들은 도시락 컵라면에 마요네즈를 엄청 뿌려 먹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한국에서 준비해 간 한국식 컵라면을 먹었는데
그들에게는 오히려 시빨간 국물을 마요네즈 없이 벌컥벌컥 들이켜는 나의 모습이 신기했을 것이다.
무슨 문제가 생겨서 그러는 건 아니었던 것 같다.
역에 오래 머물 때면 정비사들이 기다란 망치로 바퀴 주변을 두드리며 이상이 없는지 꼭 점검을 했다.
그리고 철로와 궤도 주변도 문제가 없는지 점검을 했데
실제로 기차가 7일간 이동을 하면서 기차자체나 선로의 문제로 멈춰서지 않았던 건
이런 분들의 노력이 숨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
맞은편 승강장에는 반대 방향으로 이동하는 열차가 보였다.
저 열차의 목적지가 블라디보스토크라면 앞으로 6일 동안은 더 달려야 할 테다.
반대로 나는 내일이면 모스크바에 도착을 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벌써부터 뭔가 조금 섭섭하고 아쉬운 맘이 들었다.
내가 자주 사 먹었던 러시아 아이스크림
우리네 빵빠레 같은 아이스크림이었는데,
겉은 과자가 둘러싸고 있었고 속은 달콤한 잼이 들어가 있는 맛 좋은 아이스크림이었다.
나는 예카테린부르크 역에서 이 아이스크림을 2개 사서 ‘바샤’에게 하나를 줬는데
이런 걸 왜 사주나, 싶은 표정으로 떨떠름하게 아이스크림을 받더니 별로 고맙다는 말도 없이,
그러나 나보다도 훨씬 더 맛있게 아이스크림을 먹는 바샤를 볼 수 있었다.
러시아 사람들 겉보기에는 조금 투박하고 또 표현에 좀 무뚝뚝한 면이 있다.
그래도 알면 알 수록 따뜻하고 순수하고 착했다.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는 한국 사람들 정(情)도 좀 알아주면 좋겠다.
다시 기차는 다음 역을 행해 출발을 했다.
본격적으로 우랄산맥을 넘어가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였다.
그렇지만 엄청 깊은 산을 넘어간다는 느낌은 없었고 멀리서부터 천천히 언덕을 올라가는 것처럼 보였다.
조금 늦은 점심은 쌀밥과 참치, 그리고 김을 함께 먹었다.
기차에서 맘껏 사용했던 뜨거운 물은 햇반을 데우기에 충분히 뜨거웠다.
밥도 해 먹고, 차도 우려먹을 수 있었던 정말 고마운 ‘뜨거운’ 물이었다.
내가 점심을 먹을 동안
내 옆좌석에서는 어르신이 잡지를 읽고 계셨는데
창 밖으로 들어오는 빛 때문에 역광으로 비치는 그의 옆모습이 참 아름다워 보였다.
우랄산맥을 넘어가는 동안에는 기차 가까운 곳에 길고 깊은 숲이 이어졌다.
나무가 많은 것은 좋았는데, 풍경을 멀리 볼 수 없다는 점은 조금 아쉬웠다.
이런 장벽 같은 풍경을 쉬지도 않고 6시간을 넘게 달려 우랄산맥을 건너는 중이었다.
이런 풍경은 젊잖은 어르신도 지치게 하는 것 같았다.
아직 이른 오후였지만 의자를 침대로 만들어 안거나 누워 시간을 보내셨다.
아까 할아버지가 잃던 잡지는 함께 여행 중인 (아마도) 아내분에게 전달되어 있었다.
저녁 7시 37분,
오늘의 4번째 역인 페름(Пермь, Perm’) 역에 도착을 했다.
이전 역인 예카테린부르크 역에서 6시간 동안 달려 도착을 했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긴 시간을 쉬지 않고 달리는 기차는 있을 수가 없기 때문에
이번 6시간을 기차로 달려오는 시간이 내게는 큰 경험이었다.
많은 생각도 하고 고민도 풀어 내는, 그런 시간과 경험을 가능하게 해줬다.
페름은 오래전 고생대 생물들이 많이 살았었기 때문에
지금도 생물학적으로 페름기(2.99억 년 전부터 2.48억 년 전 / 이첩기)라는 이름으로 시기를 구분하기도 하는데,
그 ‘페름기’의 페름이 이곳 ‘페름’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한다.
고생대의 마지막 시기가 이 ‘페름기’이다.
멀리서 해가 지는 모습이 너무 눈이 부셨다.
실컷 눈이 부시고 나서 뒤로 돌아서 기념사진을 하나 남겼다.
그리고 기차를 타고 아시아대륙을 건너 유럽대륙으로 온 나 스스로를 축하하고 격려해줬다.
그렇게 20분을 충분히 휴식하고 나서 다시 기차에 올랐다.
오늘 저녁은 기차에서 먹는 마지막 저녁 식사였다.
우연히 얘기를 나누다가 다 같이 저녁을 먹자고 해서 ‘바샤’와 내 윗자리 러시아 친구, 이렇게 셋이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다.
근사한 식당, 레스토랑은 아니지만 우리 앞에 놓인 작은 테이블 하나로 충분히 근사한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바샤’가 내가 자주 먹던 한국 라면을 한번 먹어보고 싶다고 해서, 한국 라면 중에 그나마 맵지 않은 ‘꼬꼬면’을 권했다.
그리고 나는 챙겨 온 라면 중에 가장 매운 ‘신라면’을 선택했는데,
처음에는 본인도 매운 것을 잘 먹는다며 이따 조금 나눠먹자고 했던 ‘바샤’였다.
그런데 잘 익은 신라면의 새빨간 국물을 보고서는 한 젓가락, 아니 한 포크도 담그지 못 했다.
나중에 따로 얘기를 해주던데,
‘바샤’에게는 꼬꼬면도 조금은 매웠었다고 한다.
일부러 컵라면을 조금 여유 있게 챙겼는데,
덕분에 이렇게 친구들과 나눠서 라면을 먹고 또 즐거운 추억도 만들 수 있어서 즐거웠다.
밤 10시 31분,
오늘의 마지막 역인 발렌지노(Балезино, Balezino) 역에 도착을 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6번째 밤이자 마지막 밤이기도 하고,
내일이면 종착역인 모스크바에 도착한다는 생각에 많이 설레기도 했던 밤이었다.
(발렌지노 역의 모습은 영상으로 남겼다.)
[시베리아횡단열차_6일차]
2019.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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