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14)] 시베리아 횡단열차, 3일차

 

 

[러시아(14)] 시베리아 횡단열차, 3일차

국외여행/러시아 Russia






3일차 아침의 시작은
아마자르(Амазар, Amazar) 역이었다.

내가 타고 있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중국의 북동국경을 따라 서쪽으로 계속 이동 중이었다.
아마자르 역에서 18분을 머물렀지만, 이제 막 잠에서 깬 상태라서 대부분의 체류 시간이 흘러간 후였다.
3분 후에 기차가 출발한다고 해서, 아쉽지만 기차 안에서 보이는 역사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으며 아쉬움을 달랬다.

멀리 산 허리에 걸친 안개가 참 인상적이었다.



어제 오후에 스보보드니(Свободный, Svobodny) 역에서 내 앞자리로 온 ‘바샤’는 아직까지 잠을 자는 중이었다.
중장비 간련 일을 하고, 모스크바 집까지 기차로 이동을 한다고 했다.

조금 무뚝뚝해서 처음에는 서로 말을 많이 아꼈지만, 어제 저녁부터 조금씩 대화를 많이 하기 시작했다.
교통비를 아끼기 위해 기차를 이용한다고 했고, 나는 세계에서 제일 긴 기차를 처음부터 끝까지 타보고 싶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인스타그램을 서로 교환했고, 모스크바 집에서 키우고 있는 강아지, ‘Sky’를 자랑하기도 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을 준비하면서
기차에서 머무는 7일 동안, 하루 3끼를 계산해 총 21개의 식사를 준비해야만 했다.
대부분 햇반과 같이 먹을 간단한 반찬들을 챙겼지만 따뜻한 국물이 생각날때 먹을 라면도 함께 챙겼다.

라면을 끓여 먹을 수는 없을 것 같아 컵라면을 챙겼는데,
문제는 컵라면의 부피가 커서 어떻게 많은 라면을 챙길까 고민을 하다가
컵라면을 모두 개봉해서 면과 스프는 봉지에 각각 따로 담고, 컵 용기는 모두 포개어서 부피를 줄였다.

기차에서 라면을 먹을 때는 봉지에서 면과 스프를 꺼내 용기에 담고 기차에 있는 뜨거운 물을 받아서 먹을 수 있었다.
기차에서 먹는 라면 맛은, 한라산 정상에서 먹는 컵라면과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정말 너무나도 맛있는 라면이었다.

3일차 아침, 첫 끼는
내가 좋아하는 참깨라면을 끓여서 참기름까지 뿌려가며 야무지게 잘 챙겨 먹었다.
러시아 사람들은 한국의 ‘도시락’ 컵라면을 끓여 거기에 마요네즈를 듬뿍 뿌려 먹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
내가 붉은색 국물의 라면을 먹을 때마다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고는 했었다.





아침을 먹고 풍경을 구경하는 동안에도 기차는 쉼 없이 달려갔다.
오전 10시 11분, 또 기차는 정확한 시간에 모고차(Могоча, Mogocha) 역에 도착했다.

기차가 달릴 때는 핸드폰 통신과 데이터가 터지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어디에 있는지 구글 지도를 통해서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이렇게 기차가 역에 정차할 때면 데이터가 꽤나 잘 터졌는데
그때마다 현재 내 위치가 어디에 있는지 구글 지도를 통해 확인을 했다.

분명 이 넓은 시베리아 대륙을 기차는 쉬지 않고 야금야금 서쪽으로 이동을 하고 있었다.
모고차 역에서는 15분을 정차했는데,
그동안 기차에서 잘 안 내렸던 사람들도 모두 내려서 바깥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고
잠시 기차에서 벗어난 해방감을 만끽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이 다음 정차역까지는 기차로 6시간을 중간 정착지 없이 달려가야 했기 때문에
이 휴식이 끝나고 나면 꼼짝없이 기차 안에서 6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나도 기차에서 내려서 기차가 출발하기 전까지 충분히 시간을 가지며 휴식을 만끽했다.













기차역마다 모습은 조금 다르지만
크고 작은 매점이 역 승강장에 마련되어 있었다.

장거리 기차여행을 가는 사람들은 기차 안 식당칸에서 따로 밥을 사 먹지 않고
기차가 역에 정차하면 이런 매점에서 빵과 라면, 마실거리를 사서 기차에 올라 식사를 해결하고는 했다.

나도 간간히 매점에서 음료수를 사 먹었는데
영어가 전혀 불가능했기때문에 눈에 보이는 음료를 손으로 가리키고 숫자를 손으로 그려가며 계산을 했어야 했다.
하지만 매점직원 모두 나에게 친절했었고, 짜증 하나 없이 미소를 보내주었던 분들이었다.





모고차 역 간판이 저기 작게 걸려 있는 것이 보였다.
플랫폼을 등지고, 역사를 바라보며 승객 한 명이 담배를 참 맛있게 피우고 있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는 동안 만났던 역은 대부분 이런 간이역 같은 곳이었다.
우리네 시골 간이역과도 같은 정겨운 느낌이 물씬 풍기던 역이 많았다.
나는 대도시의 우렁찬 역사 보다는 이런 시골 간이역이 포근하니 참 맘에 들었다.





다시 기차에 올라야 할 시간이었다.
학창시절 쉬는 시간 10분도 그랬지만, 간이역에서 쉬는 찰나의 시간은 우리네 주말처럼 언제나 참 빨리 지나간다.



시베리아횡단열차는 객실이 참 많이 이어져 있는 기차였다.
길이가 얼마나 긴지, 곡선 철로에서는 저기 멀리 뒤따르는 객차가 길게 늘어서 있는 모습이 보이고는 했다.





기차가 우랄산맥을 넘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시베리아 벌판을 달렸다.
저기 멀리 산이 가끔 보이기도 했지만 아득히 먼 곳에 가끔 나타났다 무심히 흘러가는게 전부였다.





6시간을 달려 오후 4시 5분에 체르니세브스크(Чернышевск, Chernyshevsk) 역에 도착했다.
실제로 6시간을 기차로 달렸지만 중간에 점심도 먹고 대화도 하고 낮잠도 자면서 시간을 보내다보니 그 시간이 무료하지는 않았다.

무궁화호를 타고 6시간을 달린다면 조금은 지루했을지도 모른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마치 내 방에서 밥도 먹고, 자고 쉬면서 기차를 탄다는 느낌이 들어서
같은 시간을 보내더라도 차이가 있는 것 같았다.

체르니세브스크 역에서는 6시간 동안 달려온 노력을 보상이나 하듯이
30분을 쉬어 갔다.

조금 큰 역에 닿을 때면 역사 안에도 들어가 보고는 했는데
어김없이 입구에는 이런 큰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샀던 음료수가 맛이 있어서
중간중간 기차가 정차하면 내려서 같은 음료수를 몇 번 더 사 먹었다.
체르니세브스크 역에서도 이 오렌지 주스를 다시 샀다.
가격은 2,500원 정도였다. (128루블)





내가 탔던 7호차 객차에 영어가 가능한 친구가 딱 한 명 있었다.
독일에서 온 친구였는데, 블라디보스토크를 여행하고 기차를 이용해 이르쿠츠크(Иркутск, Irkutsk) 역까지 간다고 했다.
이르쿠츠크에는 그 유명한 바이칼 호수(Озеро Байкал, Lake Baikal)가 있다.

나도 러시아 여행 마지막 일정으로 바이칼 호수를 들릴 예정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독일 친구와 여행에 대해서 서로의 일정과 생각들을 얘기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르쿠츠크까지는 기차로 3박 4일이 걸렸다.
한국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이용하고 싶지만 일정이 짧은 사람들은
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르쿠츠크까지의 3박 4일 코스를 많이 탄다고 했다.

한국 인천에서 이르쿠츠크까지는 S7항공을 통해 직항으로 이동할 수가 있어서
이르쿠츠크 여행을 마치면 비행기로 쉽게 돌아갈 수도 있었다.
나도 바이칼 호수 여행을 마치면 이르쿠츠크에서 비행기를 이용해 인천으로 갈 계획이다.









객차 내 각자 자리는 지정석이었지만
잠을 자지 않는다면 객차 내에서 이곳저곳을 이동하면서 침대나 의자에 앉아 사람들과 차도 마시고 얘기도 나눴다.

독일 친구도 시간이 날 때면 내 옆자리로 와서 자주 얘기를 나누고는 했다.
물론 낮잠을 자기 위해 침대에서 잠을 자고 있으면 그 자리를 피해 주는 편이었다.
그래서 1층 내 침대에서 낮에 잠을 잘 때 방해를 받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오후 6시 55분
기차는 바이칼 호수의 동쪽 마을, 실카에 닿았다.
실카((Шилка, shilka) 역이 꽤 커 보이기는 했지만 기차는 2분만 정차하고 떠나기로 했다.
그래서 밖을 나가보지는 못 했다.







멀리 오래된 증기기관차가 전시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러시아는 증기기관차를 참 좋아하는 것 같다.



기차가 다음 역을 향해 다시 출발하기 시작했다.
복도를 건너 내 옆 침대자리는 몇 시간 동안 자리가 비워진 상태였다.
그래서 이쪽 풍경이 지겨울 때면 저쪽 창가로 자리를 옮겨 풍경을 구경하기도 했다.

다음 역까지는 3시간을 달려가야 했다.
저녁 7시가 조금 넘어 저녁을 챙겨 먹었다.

뜨거운 물을 통에 받아 와 햇반을 익혔다.
그리곤 한국 반찬들을 꺼내 한상 가득 차려보았다.



나는 실온에 오래 보관할 수 있고, 설거지거리가 많이 나오지 않는 반찬을 주로 준비했다.
도시락 김과 깻잎, 무말랭이, 마늘종과 장조림 같은 반찬이었다.

내가 밥을 먹는 모습을 몇 번 지켜보더니 맞은편에 앉은 ‘바샤’가
간간히 터지는 데이터를 이용해서 핸드폰 번역기로 나의 식습관에 대해 궁금한 걸 물어봤다.

너는 채식주의자이니?
고기는 전혀 먹지 않니?

그러고 보니 기차 안에서 먹을 반찬에 고기반찬이 없었다.
사실 나 고기 엄청 좋아하는데, 완전 고기파인데, 조금 억울했다.

손을 저으면서 나 고기 엄청 좋아한다고 다급하게 한국어로 소리치듯 말했다.
그리고 멀뚱멀뚱 내 말의 의미를 되짚어 보는 ‘바샤’에게 나도 번역기를 이용해서 내 반찬을 설명을 해줬다.

 너 언제 한국에 꼭 놀러 와라!
불고기, 두루치기, 불백, 한우, 삼겹살 내가 코스 별로 다 사줄게!!

사실 미트볼, 곰탕 같이 간단히 데워 먹을 수 있는 고기반찬도 준비할까 싶었지만
기차 안에서 기름기 있는 음식과 반찬 설거지가 어려울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먹고 남은 햇반 그릇에 덜어 먹고 쉽게 통을 버려도 될 것도 같았는데 첨엔 미쳐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나는 여행을 하면 여분의 봉지, 봉다리를 많이 가지고 다니는 편이다.
내 여분의 봉지는 이렇게 테이블 아래에 걸어두고 휴지통으로 참 요긴하게 잘 사용했다.
이런 휴지통은 차장이 하루 한 두 번 객실을 청소하는 시간에 수거를 해가서 언제나 쾌적한 객실을 유지할 수 있었다.



아참,
그리고 러시아 사람들 해바라기씨와 무슨 원수가 졌는지,
하루 종일 해바라기씨를 엄청 까먹는다.

나는 내가 가져간 맥심모카골드 몇 개, 혹은 마이쮸 몇 개를 같이 먹자고 나눠주고는 했는데
그럴 때마다 짐가방 한 곳에서 해바라기씨 한 봉다리를 테이블에 꺼내서 같이 먹자고 놓아주고는 했다.

내가 저녁을 먹는 동안 ‘바샤’는 내 앞에서 또 저렇게 해바라기씨를 까먹고, 껍질로 산을 만들어 놨다.





저녁 9시 31분
여름이라 시베리아의 해는 저녁 9시가 다 되어서야 없어지고 사방에 어둠이 찾아오고는 했다.

막 내렸을 때 도착한 역은 카림스카야(Карымская, Karymskaya) 역이었다.



현재 기온은 영상 17도였다.
반팔, 반바지 차림으로 러시아 한여름의 저녁은 조금 쌀쌀한 기온이었다.
그래서 저녁에 기차 밖을 나올 때면 위에 바람막이를 하나 걸치고 나와야 했다.



역에서 18분 정차를 했는데 좌우로 많은 볼거리가 펼쳐져 있어서
역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담배 연기가 싫었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무리가 없는 곳을 일부러 찾아다니면서도
역사와 플랫폼 이곳저곳을 둘러보려 애를 썼다.

그렇게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다시 기차에 올랐다.
낮잠을 자두어서인지 피곤하지가 않아 기차가 다음 역을 향해 이동하는 동안 깜깜한 풍경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2시간을 더 달려, 저녁 9시 34분에
러시아의 광산 도시, 치타(Чита, Chita) 역에 도착했다.

바이칼 호수와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지만 관광도시는 아니기 때문에
한국에서 관광의 목적으로는 찾지 않지만 35만의 인구수를 가진, 시베리아 대륙에서는 꽤나 큰 도시다.
이곳 치타 역은 만주에서 오는 만주선(만주 횡단열차)과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만나는 역이기도 한 교통 요충지다.



치타 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내리고 또 새로운 승객이 기차에 올랐다.
그리고 41분 동안, 꽤 길게 정차를 했다.
큰 도시에 오래 정차를 하면서 기차도 정비를 하고 필요한 물품을 싣고 내리는 것 같았다.

플랫폼 바로 앞쪽으로 역 광장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이 있어서 역 앞쪽까지 잠깐 걸어갔다 돌아왔다.





내가 언제 또 이곳에 와 보겠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새벽에 정차하는 역이 아니라면 기차가 정차하는 동안 기차 밖으로 나와 짧게나마 역사를 둘러보려 했다.





다들 어떻게 그렇게 정확하게 시간을 잘 지키는지,
각자의 시간을 보내다가도 출발 시간에 맞춰 모두 정확히 기차에 승차를 하고는 했다.

그렇게 기차에 올라서는 3일차 기차 여행을 끝내고 나도 잠을 청했다.
기차에서 자는 잠은 밤잠이든 낮잠이든 깊은 잠에 빠져들 수 있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_3일차]

2019.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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