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횡단열차 2일차의 첫 번째 이야기]
[러시아(12)] 시베리아 횡단열차, 2일차 #1
시베리아 횡단열차 2일 차
말 그대로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시베리아 평원을 열심히 달려가는 중이었다.
창 밖으로 드넓은 평지가 끝없이 나타났다.
가끔씩 넓은 강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고는 했지만 대부분은 초록이 무성한 평지 풍경이 대부분이었다.
이 넓은 초원이 겨울에는 새 하얀 눈으로 덮어진다고 생각하니 자연의 대단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러 갔던 시기에 마침
나는 나의문화유산답사기(유홍준) 시리즈를 처음부타 다시 읽기 시작했던 즈음이었다.
기차에서 읽으려고 2편, 산은 강을 넘지 못하고, 석굴암 편을 챙겨갔었는데
정작 풍경을 보고 사람들과 얘기하고 노느라 책은 많이 읽지 못했다.
내 맞은편에 앉아서 여행을 같이 했던 ‘아리나’와 기념사진을 찍었다.
나는 러시아어를 전혀 몰랐고,
핸드폰 데이터가 터지지 않는 시간이 많아서 번역기를 사용할 수도 없었다.
서로가 짧은 영어로 대화를 주고받았지만 신기하게도 대화가 잘 통했다.
사진을 찍자고 했더니 흔쾌히 그러자고 하면서 살짝 포즈를 취해주었다.
내가 맥심모카골드 커피를 줬더니
같이 먹자며 해바라기씨를 잔뜩 테이블에 꺼내주었다.
러시아 사람들 정말 해바라기씨를 많이 먹고 또 잘 먹는다고 느꼈는데,
300개 정도 되는 해바라기씨를 5분 정도에 후딱 다 까먹는 수준이다.
나도 심심하게 해바라기씨를 먹으면서 아리나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주고받았다.
그러다 아리나는 ‘에카테리노슬라브카(Ekaterinoslavka, Екатеринославка) 역’에서 내려서 아쉬운 작별을 했다.
약 하루 정도 같이 기차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정도 들었는지
서로가 아쉬워하면서 각자의 남은 여행을 응원해 주었다.
그렇게 기차는 아리나를 내려주고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철길을 따라 이동을 했다.
저녁 5시 42분, 기차는 벨로고르스크(Belogorsk, Белогорск) 역에 도착을 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30분 쉬어 가기로 했다.
이곳에서 기차를 끄는 기관차를 교체하는 것을 구경했는데,
경쾌한 소리를 내면서 철컥하고 기차를 연결할 때 기관사가 경적을 ‘뿡뿡~뿡~’ 하고 울려줘서 귀여웠다.
벨로고르스크 역은 생각보다 큰 역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내리고, 또 새로운 사람이 기차에 올랐다.
역사 안을 구경해 볼까도 했지만 그 사이 기차가 떠나가버릴까 겁이 나서 그러지 않았다.
(하지만 기차는 정시에 출발하기 때문에 시간만 잘 확인한다면 놓칠 리는 없다.)
그렇게 30분의 휴식과 기관차 교체를 끝내고 기차가 다시 모스크바를 향해 힘차가 출발을 했다.
창문 밖으로 그렇게 역사와 플랫폼을 구경하며 벨로고르스크에서의 풍경을 끝까지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기차가 출발하든 말든 상관없다는 표정과 자세로
내 침대 맞은편 꼬마는 최선을 다해 잠을 자고 있었다.
잠든 아이의 모습이 참 평온해 보였다.
조금 전 기차에 내려 구경했던 역사 입구의 모습
레닌으로 보이는 동상이 나를 향해 손을 들어 잘 가라고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그렇게 창 밖을 보던 중에
낡은 기차 하나가 끊어진 철로 위에 놓여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내 옆에 앉은 사람이 2차 대전 때 사용했던 기차를 그대로 전시해 뒀다는 설명을 해줬다.
그때는 소련(소비에트 연합) 시절이었을 텐데,
그러고 보니 여기 있던 사람들 중 몇몇은 소련 시절을 살아본 적이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멀어져 가는 소련 기차와 차를 마시며 창밖을 보는 옆 침대 손님
기차에 머무는 내내 나와 눈이 마주치면 미소를 건네며 인사를 해주는 사람들이었다.
러시아 사람들에 대해서 처음에는 막연한 편견 같은 것이 있었다.
하지만 기차에서 만났던 러시아 사람들은 기차에서 유일한 동양인인 내게 너무도 친절했고 따뜻했다.
참 많은 역을 지나쳤지만,
모든 역에서 기차 밖을 나갈 수는 없었다.
짧게는 1분만 머무는 역도 있었고, 보통은 3분 정도 머물며 빠르게 승객이 내리고 타는 것만 허락하는 역이 많았다.
그렇지만 역에 머무는 동안 창 밖으로 보이는 역사 모습을 구경하기 위해 노력을 했다.
각 역마다 역사 중앙에는 이렇게 시간을 알려주는 전자시계가 걸려 있었는데,
똑같이 현재시간 18시 59분 / 날짜 8월 17일(17.08) / 기온 15도씨를 각각 알려주고 있었다.
저 시간은 핸드폰 시간과 동일한 시간이었고,
기차는 정해진 시간에 거의 정확히 정해진 역에 도착해서 나를 놀라게 했다.
이 긴 노선과 시간 동안 연착을 전혀 하지 않는
시베리아 횡단열차
저녁 8시 17분
또 기차는 정확히 약속된 시간에 ‘시마노브스크(Shimanovsk, Шимановск) 역’에 도착을 했다.
이곳에서는 21분간 정차를 할 예정이어서 또 기차를 내려서 저녁 공기를 맡아보기로 했다.
기차가 장시간 정차를 하면 이렇게 좁은 복도에 기차에서 내리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선다.
지금 생각하면 이 모습조차도 참 추억이 되는 모습인 것 같다.
이 역에서 나랑 만 하루를 꼬박 같이 기차에서 시간을 보내며 친해졌던 친구,
‘민냐’가 집에 다 도착을 했다면 기차에서 짐을 챙겨 내렸다.
내 바로 위, 2층 침대를 사용했던 ‘민냐’였는데,
잠은 따로 자면서도 아침이 되면 내 침대로 내려와 내 옆에 나란히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던 친구였다.
처음에는 어색하기도 하고 나는 약간 겁이 나기도 해서, 서로가 말을 많이 아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말을 많이 하는 친구 사이가 되었다.
그런 친구가 집에 간다고 하니 참 많이 아쉽고 섭섭했다.
기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간다고 했을 때,
빠르고 편한 비행기가 있는데 왜 굳이 기차를 타고 모스크바까지 가냐고 묻던 친구였다.
생각해 보면 그들은 단순한 이동수단일 뿐이었다.
비싼 비행기 대신 선택한 교통수단인데, 제한된 시간에 여행을 떠난 내가 그들과 같이 기차를 타는 것을 신기해했다.
하지만 내릴 때가 되어서는 내 여행이 부럽다고도 했고, 또 응원해 주겠다고 힘을 나눠주기도 했다.
늘 건강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분을 쉬었다가 기차는 어김없이 다시 역을 박차고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조금 늦었지만 나는 햇반을 데우고 챙겨 온 밑반찬을 꺼내 저녁을 챙겨 먹었다.
이상하게도, 객차 안에서는 거의 운동량이 없을 텐데
기차의 움직임에 몸을 맡겨서 그런지 소화가 정말 잘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매 끼니를 빠짐없이 챙겨 먹었고 또 사람들이 나눠주는 간식도 남김없이 참 맛있게도 잘 먹어 치웠다.
밥 맛이 없으신 분,
입 맛이 없으신 분,
반찬 추정이 심하신 분들은 꼭 시베리아로 떠나시라!!
[시베리아 횡단열차_2일차]
2019.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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