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에서 잠이 잘 올까 걱정도 하고 우려도 했는데
그런 내 맘과 달리 기차에서 첫날밤을 나는 너무도 잘 보냈다.
그냥 잘 보낸 것이 아니라, 정말 기절하듯 숙면을 취했는데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이렇게 푹 잘 잤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정말 깊은 잠을 잤다.
나는 이날뿐만 아니라 기차에서 자는 잠은 낮잠이든 밤잠이든 정말 깊은 잠에 빠져들었는데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좋은 점 중 또 하나가 깊은 잠을 잘 수 있다는 것이라고 얘기해주고 싶을 정도다.
왜 그럴까 나름대로 생각을 해보니,
기차의 규칙적인 흔들림이 갓난아기가 누워 있는 요람 같아서 그런 게 아닐까?
다시 내가 이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게된다면 그것은 분명 깊은 잠을 자고 싶은 내 욕망이 이끄는 행동일 것이다.
그렇게 깊은 잠을 자고 눈을 뜨니 열차는 막 하바롭스크 역에 정차하는 중이었다.
하바롭스크(하바로브스크) 역에서 기차는 30분간 정차할 예정이었다.
하바롭스크 Хабаровск (Khabarovsk)
러시아 극동부에 위치한 행정, 산업, 교통의 중심지이자 극동지역 최대 도시다.
우수리강과 합류점에 가까운 헤이룽강 중류 우안에 있는 요충지다.
17세기 중엽 러시아 탐험가 E.P.하바로프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시베리아를 동과 서로 나누는 거점이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 부천시와 형제도시로 동맹을 맺고 있다.
큰 도시여서 그런지 30분간 쉬어가면서 기차도 정비하고 필요한 물품을 싣고 내리는 것이 보였다.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나도 잠이나 깰겸 잠시 밖으로 나가 봤는데,
비가 와서 오래 머물지 않고 다시 기차 안으로 돌아왔다.
기차가 한 역에서 30분을 머문다는 것도 나에게는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 사이에 승객들은 밖에 가서 담배도 피고, 스트레칭도 하고 또 간식거리를 사 왔다.
그리고 기차가 움직이면 핸드폰이 터지지 않는 것에 대비해서
가족과, 지인과 통화를 하는 사람도 많았다.
충분한 휴식 후에 기차가 다시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내 아래 침대에는 남매 어린이들이 일어나서 아침을 맞고 있었다.
사이좋은 남매라서 보는 내가 다 뿌듯했다.
다시 아리나가 노트북으로 애니매니션을 틀어줬는데
이번에는 2017년에 개봉한 모아나(Moana)를 틀어줬는데 나는 언어를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같이 재미있게 봤다.
기차에서 나에게 이래라저래라 얘기하는 사람이 아부도 없었다.
챙겨 온 맥심 모카 커피를 마시면서 여유롭게 차창 풍경을 바라왔다.
시베리아 벌판을 한창 달리는 중이었는데, 여름이어서 푸른 초원이 길게 펼쳐져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꼬마 숙녀가 기차에 누워 남은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엄마 말도 잘 듣고 동생도 참 잘 챙기는 착한 누나였다.
오후 1시 28분
정해진 시간에 정확히 오블리체(Obluchensky /Obluch’e) 역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기차는 15분간 정차를 했다.
주변에 크게 볼 것이 없는 간이역 같은 곳이었는데,
기차정비나 주유 같은 목적이 따로 없더라도 승객들을 위해서 이렇게 쉬어가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기차 안에서는 담배를 피울 수가 없었기 때문에
비흡연자인 나는 너무나 쾌적한 여행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휴식 시간에 흡연자들은 일행과 여유 있게 담배도 피우고 대화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실제로는 객차와 객차사이 공간에서 차장 몰래 담배를 비우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기차가 정차를 하는 동안 차장은 각 객실 앞에 서서 기차를 오르고 내리는 사람들을 통제했다.
딱히 제재를 하거나 티켓을 보여달라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휴식시간이 끝나고 기차가 출발을 알리면 빨리 승차하라고 안내를 해주기도 했다.
긴 휴식시간을 가진 역이면 열차 앞으로 많은 간식들이 모여드는데
이것도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이용하는 하나의 재미였다.
나는 평소에도 간식을 잘 즐기지는 않지만
그래도 처음 맛보는 음료나 간식거리는 사서 맛을 보고는 했다.
저기 아주머니도 우리나라 술떡 같은 빵을 들고 손님들에게 팔고 있었는데
신기해하는 나와 달리 러시아 사람들은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기차 출발시간이 되어 다시 열차에 올랐다.
아침을 먹은 후에 낮잠을 자는 아리나는 오후 2시가 되도록 깨지 않고 계속 잠을 자고 있었다.
아리나는 ‘우골라야(Угольная, Ugol’naya)’에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지금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란다.
집과는 기차로 1박 2일 떨어진 곳인 에카테리노슬라브카(Екатеринославка, Ekaterinoslavka)라고 했다.
우골라야 친구와 차로 해변에 가서 놀았다고 했다.
친구를 만나기 위해 기차로 1박 2일을 가야 하는 나라,
또 해변을 가기 위해 1박 2일을 가야 하는 나라,
그곳이 러시아였다.
아리나가 자든가 말든가
나는 조금 늦은 점심을 챙겨 먹기로 했다.
나는 집에서 햇반과 캔참치, 김, 그리고 간단한 반찬을 챙겨 왔다.
7일 동안 총 3끼,
21번의 식사를 위한 보급품이 필요했다.
그만큼 내 캐리어는 그 어느 해외여행 보다 무겁게 출발을 했는데,
모스크바에 가까워올수록 점차 그 무게를 잃어 갔다.
나는 하루 3끼 분량의 식단을 머리 위 선반에 올려 두고 끼니를 챙겨 먹었다.
다행히 각 객실 입구에서는 24시간 뜨거운 물을 맘껏 사용할 수 있었다.
물론 차장이 머무는 방에는 전자렌지가 있었지만 매번 부탁하는 것도 실례일 것 같아서
나는 뜨거운 물을 받아서 햇반을 데워 먹었다.
뜨거운 물도 이겨내는 플라스틱 반찬통을 이용해서 햇반을 넣고 데워 먹었는데
전자렌지에 돌리는 것만큼이나 따끈따끈한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반찬도 가열이나 조리가 필요 없는 것으로 준비해 갔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식사를 챙겨 먹을 수 있었다.
2019.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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