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뜰 때까지 공항에서 시간을 보낸 후, 기차를 타고 시내로 이동을 하기로 했다.
사진에 보이는 공항1층의 오른쪽 끝에 기차를 타러 가는 출입구가 연결되어 있었다.
공항철도 시간표가 2개가 있었는데, 러시아어는 완벽히 읽을 수는 없었지만
윗쪽은 블라디보스토크역에서 공항으로 오는 시간표, 아래는 공항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시간표로 보였다.
나는 오전 7시 42분,
공항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오늘의 첫 기차를 타기로 했다.
비용은 250 루블 (약 3,500 원)
기차 플랫폼으로 이동하기 위해서 짐 검사를 해야 했는데,
아직까지 공항 이외의 장소에서 이렇게 짐검사를 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다.
러시아에 있는 동안 건물을 드나들 때 늘 짐검사를 해야만 했는데,
기차나 지하철과 같은 대중교통을 탈 때도 예외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한 지 4시간 만에 공항을 벗어날 수 있었다.
해가 떠서 사방이 밝아오고 있었다.
긴 복도 같은 통로를 지나 러시아 기차를 눈 앞에서 처음 마주했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6박 7일 동안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탈 계획이 있기도 했지만
여행지에서 기차를 탄다는 것은 언제나 나를 설레게 했다.
이른 아침 공항에서 기차를 이용해 블라디보스토크 시내로 가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가까이에서 마주한 기차는 열차 대부분이 빨간색으로 선명하게 도색이 된 열차였다.
우리네 공항철도 보다는 일본의 한큐선 기차와 많이 닮아 있었다.
묵직하면서도 튼튼한 인상이었다.
저기 시계전광판에 ’85’라고 씌여진 것은 온도일까?
러시아는 화씨로 온도를 표기하는데, 85 화씨가 맞다면, 오전 7시 33분 현재 기온은 섭씨 29도 정도인 것 같았다.
하지만 체감온도는 그렇게 덥지 않았다.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블라디보스토크의 창 밖 풍경을 감상하고 싶었다.
하지만 전날 퇴근 후 바로 비행기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로 오는 동안 잠을 2~3시간 밖에 자지 못 해서
기차가 출발하자 마자 나는 기절하듯 잠이 들고 말았다.
중간중간 잠시 잠에서 깨기도 했는데,
목요일 아침, 출근을 하는 사람들이 기차에 많이 타 있는 것이 보였다.
공항을 출발할 때는 빈자리가 많았었는데 어느덧 우리네 출근길 지하철 모습이 되어버린 공항철도였다.
공항철도가 출근길 통근열차가 되는 모습이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7시 42분에 공항을 출발한 열차는
8시 39분, 1시간이 채 되지 않아 나를 블라디보스토크 역에 내려주었다.
블라디보스토크 역을 나와서 역사 외부에서 사진을 찍었다.
블라디보스토크 역은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시발 역이자 종착 역이다.
북한과도 인접해 있는 역이기 때문에,
최근에도 북한의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푸틴과 회담을 위해 찾았던 역이기도 하다.
블라디보스토크 역
1893년 블라디보스토크-우수리스크 구간이 처음 개통했다.
1905년 러일전쟁이 한창일 때 모스크바까지 이어지는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임시개통했고,
1916년에 전 구간이 정식 개통하면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9,288km에 달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지구 둘레의 1/4, 대한민국 경부선의 20배가 넘는 거리이다.
그냥 봐도 결코 작은 역이 아니었다.
플랫폼도 여러 개가 있었고, 고풍스러운 건물도 여러 개가 이어져 있는 모습이었다.
러시아는 겨울에도 얼지 않는 부동항을 찾기 위해 동쪽으로, 동쪽으로 이동해 결국 블라디보스토크 항을 손에 넣었다.
러시아에게는 정말 중요한 역이고, 또 항구가 있는 블라디보스토크일 테다.
고가 위에서 승강장이 있는 역사 아래를 내려다봤다.
오래된 기차가 전시되어 있는 모습도 보였다.
내일이면 이곳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모스크바로 출발할 곳이었다.
역 입구의 모습은 동화 속에 나올법한 마법의 성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내일 헤매지 않기 위해 입구의 위치를 확실히 확인해 뒀다.
역에서 아드미랄 포킨거리까지 10여 분을 걸어서 이동했다.
여기 근처에 숙소가 있기도 했고, 역에서 거리가 멀지 않아 블라디보스토크 첫 목적지를 이곳으로 잡았다.
그리고 체크인 시간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기 때문에 시내를 구경하며 천천히 걸어 닿을 수 있는 곳이었다.
아드미랄 포킨 거리 Улица Адмирала Фокина (Admiral Fokin street)
러시아에는 중심가, 번화가 거리를 아르바트(Арба́т) 거리라고 하는데,
아드미랄 포킨 거리는 블라디보스토크의 아르바트 거리로 불리는 곳이다.
1860년 중국과의 협약 이후 북경거리로 불리며 많은 중국인이 거주했던 곳인데,
1964년 태평양 함대를 이끌던 포킨 제독의 이름을 따 현재 이름이 되었다.
아드미랄 포키 거리에는 길 양 옆으로 맛집과 카페, 상점들이 들어서 있는데,
나는 너무 일찍 도착을 해서 조금은 한산한 모습이었다.
이곳의 유명한 카페인 해적 카페인데
가게 오픈하기 전 직원이 열심히 청소 중인 모습이 보였다.
체크인 전까지 시간을 보낼 곳이 필요했는데 카페조차 문을 열지 않아, 쉴만한 곳이 마땅치 않았다.
커피와 과자로 유명한 파이브 어클락(Five O’Clock)도 있었다.
이곳도 아직 오픈 전이라 들어가 볼 수가 없었다.
마침 아침을 먹어야 할 것 같아서 문을 연 식당을 구글에서 찾았다.
아침 일찍 문을 연 식당이 또 햄버거 가게 밖에 없어서, 아침은 든든하게 햄버거를 먹어보기로 했다.
영어가 잘 통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림을 가리키며 주문을 해서 원하는 햄버거를 주문할 수 있었다.
맥도날드와 다르게, 맥모닝과 같은 아침을 위만 메뉴가 따로 없었다.
나는 맥모닝보다는 그냥 햄버거가 훨씬 더 맛있고 좋다.
속이 아주 실해서, 아침으로 먹기에 충분했다.
덕분에 햄버거를 먹고도 가게 안에서 여유있게 시간을 보낼 수가 있었다.
아침을 먹고 다시 아드미랄 포킨 거리를 찾았다.
커피를 한 잔 하러 해적카페로 가는데, 낯이 익은 한글이 보였다.
아무래도 한국인이 많이 찾는 곳이다 보니,
한국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가게가 많이 있어 보였다.
카페는 이제 막 문을 열어서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나 말고도 아침 일찍 해적카페를 찾은 손님이 많이 보였는데, 한국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어디에 계시다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카페로 몰린 것일까, 신기하기도 했다.
아이스아메리카노 한잔에 69루블, 거의 1,000원 남짓한 가격으로 커피가격이 저렴했다.
러시아 물가 자체가 한국보다 조금 저렴하기도 했지만, 물가 치고도 많이 저렴한 커피 값이었다.
다들 이 컵에 그려진 해적 얼굴을 보기 위해서 많이 찾는 것 같았다.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귀한 커피라서 아주 정성 들여서 조금씩 커피를 마시며 밀려오는 졸음을 쫓았다.
입구에서는 몰랐는데 카페 내부가 깊고 넓어서 카페에 머무는 동안 참 편안하게 잘 쉴 수 있었다.
그렇게 블라디보스토크에서의 오늘과 내일 일정을 정리하면서 커피와 카페를, 그리고 이제 막 시작하려는 나의 여름 휴가를 즐겼다.
숙소는 원래 오후 2시에 체크인이 가능하다고 안내가 되어 있었는데,
호스트와 연락을 해서 조금 일찍 체크인을 요청했다.
친절한 호스트가 체크인이 가능하다고 답변을 줘서,
12시쯤 체크인을 하기 위해 예약해 둔 숙소로 이동을 했다.
위치는 아드미랄 포킨 거리에서 한 블록 안으로 들어간 골목이었는데,
골목이 조금 스산하게 보이기는 했지만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거리라 크게 위험하지는 않았다.
혼자 하룻밤을 묵기 위해,
에어비앤비로 다락방 하나를 예약했다.
예약할 때 건물 외관은 따로 확인이 되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건물이 오래되어서 놀랬다.
사실 혼자 하는 여행에서 숙소를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정말 오래된 일반 가정집 같아 보여서, 제대로 찾아온 것이 맞나 싶었다.
호스트에게 다시 연락을 해서 입구 사진을 보여 주니,
제대로 찾아온 것이 맞다고 해서 캐리어를 이고 지고 계단을 올라가 집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외벽도 그렇고, 실내도 그렇게 쾌적해 보이지는 않는 집이었다.
그래도 나 하나 하룻밤 묵어가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체크인을 위해 거실 쇼파에 앉아 있는데
어디에 숨어 있다가 온 것인지 하얀 고양이 한마리가 옆에 와서 털을 고르고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였다면 분명 이녀석과 대화가 통했을텐데
아직 나는 러시아어도, 고양이 언어도 많이 서툰 편이었다.
내 방은 이 집의 3층, 다락에 위치한 작은 쪽방이었다.
임시로 지어진 공간 같았는데, 그래도 적당히 아늑하고 포근한 방이었다.
나는 체크인 후에 짐을 간단히 풀고는, 어제와 오늘 부족한 잠을 낮잠을 자면서 조금 보충을 했다.
2019.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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