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동안 일이 없는 휴일이었다.
친구들과 무엇을 할까 얘기를 하다가 브리즈번에서 공부하고 있는 친구를 보러 가기로 했다.
번다버그에 오기 전에 브리즈번에 들려 친구를 보고 헤어진지 거의 두 달이 되어가는 시점이었다.
그 동안 번다버그 근교를 다녀보기는 했지만 3일 동안 일이 없을 것이고,
친구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약 350km 떨어진 거리를 고속도로를 타고 약 4시간을 가야 했다.
서울과 부산 거리지만, 시드니에서 번다버그까지 1,300km를 달려 왔던 경험이 있어서 브리즈번까지는 그렇게 멀어 보이지 않았다.
1박 2일의 일정으로 브리즈번 여행을 계획했고, 브리즈번에 있는 친구도 우리가 가는 날에 맞춰 학원 일정을 빼기로 했다.
나를 포함해 번다버그에 있는 친구 세명 중 한 명은 번다버그에 남기로 했다.
같이 가는 친구의 여자친구와 ‘또 다른 한국인 친구’까지 총 넷이서 브리즈번으로 가기로 했다.
같이 여행을 가게된 ‘또 다른 한국인 친구’는 브리즈번에 있는 자신의 친구가 보고 싶다며, 가는 차량에 태워달라고 해서 기꺼이 그렇게 하기로 했다.
브리즈번에 도착하면 헤어졌다가 돌아오는 길에 다시 만나서 차를 타고 오기로 했다.
날씨가 너무 맑았다. 고속도로라지만 왕복 2차선의 국도와 같은 도로였고, 차도 많이 없었다.
오랜만에 친구를 보러 간다는 생각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차를 몰았다.
번다버그에 처음 올때와는 다른 기분이었다.
처음에는 그 끝을 알 수 없어 같은 길도 길고 지루하게 느껴졌었는데 그래도 한번 다녀봤던 길이라고 나도 모르게 친근함이 느껴져 길이 짧게 느껴졌다.
넷이서 차에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덕분에 지루하지도 않게 운전을 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영상을 보니 다시 오른쪽 핸들이 어색하게 느껴진다. 어떻게 호주에서 운전을 했었는지 사진이나 영상이 없으면 스스로도 믿을 수가 없을 것 같다.
다시 저 광활한 호주 대륙을 차를 몰아 여행을 가고 싶다.
브리즈번에 도착했을 때 약속 장소에 친구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였지만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마치 어제 만난 친구처럼 자연스럽게 어울리기 시작했다.
친구를 만나 브리즈번의 중심인 사우스뱅크를 걸었다.
도시 한 가운데에 이렇게 큰 정원과 강이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여유로운 브리즈번 강변으로 도시도시 하면서 공원공원한 공간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시드니의 하이드파크와는 또 다른 멋과 여유가 느껴지는 공원이었다.
스콜, 열대성 소나기가 한 차례 내렸지만 금새 그쳤다.
오히려 소나기가 내려 날씨가 상쾌했고 청량감이 느껴졌다.
그래서 그런지 사우스뱅크가 훨씬 더 여유롭게 다가왔다.
점심 시간에 도착을 했었지만 점심을 먹기 전에 사우스뱅크를 조금 걸어서 더욱 허기가 졌다.
근처 푸드코트로 가서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했다.
호주에는 시티에 푸드코트가 참 많이 있었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살고 있어서, 다양한 국적의 음식도 경험할 수 있었는데,
전문 레스토랑을 찾아가도 되지만 푸드코트에서 각자 먹고 싶은 음식을 골라먹는 재미도 있었다.
무엇보다 가격이 저렴해서 우리 같은 생계형 여행자에게는 더 없이 좋은 레스토랑이었다.
점심을 먹고 시티를 걸어보기로 했다.
시드니에 비해 규모가 작았지만 그래도 농장에서 두 달 동안 머물면서 잊고 있었던 도시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시내 중심가에서 작은 음악회가 열렸는데, 이런 풍경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한 동안 서서 음악을 감상했다.
음악 제목은 모르겠지만 지친 여행객에게 잔잔하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음악회었다.
음악이 가진 힘과 영향력을 신봉하고 있는 나는 어딜 가나 음악이 들리면 멈춰서서 음악을 듣고는 한다.
한참 지난 후에 문득 그 때 그 음악을 들었을 때 그 때 느꼈던 기분과 보았던 풍경, 맡았던 냄새가 기억이 나고는 한다.
음악회가 끝나고, 다음으로 브리즈번의 시청건물에 가보기로 했다.
오랜 역사를 가진 건물이기도 했지만, 그것 보다 건물 위로 올라가 브리즈번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었기 때문에 브리즈번의 시티뷰가 궁금하기도 했다.
건물은 일반인들에게 항상 공개가 되어 있었는데, 사전 예약이나 신청 없이도 언제든 건물을 둘러볼 수 있었다.
건물 외관을 둘러보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는데, 조금 전까지 내가 걸었던 시티의 풍경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건물이 잘 전되어 있고 예전 그대로의 멋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문 하나를 지났을 뿐인데 100년 전으로 돌아간 듯한 착각을 느낄 정도였다.
건물 중앙홀에서 친구와 멋을 잡고 사진을 남겼다.
1층는 시청에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볼 수 있었다.
1층을 다 둘러보고 우리는 브리즈번을 조망하기 위해 윗층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계단으로 이동을 할 수도 있었지만 우리는 건물의 엘레베이터를 이용하기로 했는데,
이 시청 건물의 엘리베이터가 또 명물이었다.
오래전 엘레베이터를 그대로 활용하고 있었고, 관광객은 물론 누구라도 편하게 엘레베이터를 이용할 수 있었다.
엘레베이터는 오래되기도 했고 옛날 방식 그대로 운영이 되고 있었는데
간단한 버튼식의 요즘 엘레베이터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쉽게 조작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엘레베이터 앞에는 엘레베이터를 직접 운영해주시는 분이 계셨는데
단순히 엘레베이터를 운영만 하는게 아니라 엘레베이터를 소개하고 그와 관련된 이런저런 이야기를 친절히 들려주시기도 했다.
영화에서나 보던 엘레베이터를 직접 탄다는 설렘도 있었지만 설명을 듣고 타니 더 감정이 몰입이 되는 것 같았다.
엘레베이터 앞이 관리원 할아버지의 사무실이었는데, 오래된 라디오가 엘레베이터와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을 했다.
엘레베이터는 서서히, 그리고 차분하게 우리를 위로 위로 실어 날랐는데,
철컹 거리는 소리와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조금은 무섭기도 했는데, 이 엘레베이터가 무너지거나 떨어진다는 느낀 보다는
오랫동안 사람들을 들어 올리고 내리는 일을 하느라 참 대견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시청 전망대에서는 기대만큼이나 멋진 브리즈번 시내를 전망할 수 있었다.
시청 건물과는 대조되게, 시청에서 바라본 브리즈번 시내는 현대식 건물들이 빈틈 없이 들어서 있어 이질감을 느끼게 했다.
브리즈번은 변화하고 있었다.
13년이나 지난 지금은 또 얼마나 변해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보고 싶기도 하다.
시청을 나와 다시 시내를 걸었다.
익숙한 장면이 나오면 어김 없이 사진을 찍었고
처음 보는 장면이 나오면 눈과 사진으로 동시에 담아 오늘을 기억하려 했다.
해가 지기 전에 숙소를 예약하고 오늘 밤을 준비했다.
하지만 숙소에서만 머물 수는 없어 우리는 시티로 다시 나가 저녁을 먹고 간단히 소주도 한 잔 곁들였다.
외국인이 소주를 참 좋아하는 것을 자주 봤었는데, 한국의 소주가 이렇게 세계적인 인기를 얻을 것이라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반대로, 한국에서 당시 2,500원~3,000원 하던 소주를 10,000원을 주고 마시려니 너무 비싸다는 생각을 안 할 수 없었다.
평소에는 20L짜리 박스 와인(Box Wine)을 마시면서도, 기념을 하기 위해서는 비싼 돈을 내고서라도 소주와 한국식 안주를 찾았었다.
저녁을 먹고 나왔을때, 이미 깜깜한 어둠이 내려 도시의 화려한 조명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브리즈번의 저녁도 참 매력적이고 이쁘다는 생각을 했다.
숙소에 바로 들어가기 아쉬워 노래방에 추가로 들렀다가 오랜만에 신나게 놀았다.
어딜가나 한국 식당이 있고, 한국 노래방이 있다는 것은 그나마 조금 위안이 되었다.
호주에 와서 호주의 방식을 느끼고 경험하고 싶은 생각이 항상 있었지만, 이렇게 가끔식은 다시 한국을 느끼며 마음의 위로를 받기도 했다.
또 하나,
호주에서 한국 김치가 너무 귀했는데,
대부분 중식에서 만든 중국 공장식 김치가 대부분이었지만 그 마저도 없어서 김치 없는 밥을 먹는 날이 많았다.
맛은 한국의 집 김치와 천지 차이가 있었지만 그 마저도 구하기가 쉽지 않았고 가격도 비쌌다.
이날 농장에서 온 우리를 위해 친구가 김치를 선물해줬는데,
이날 받은 김치를 농장에 가져가서 한국 친구들과 맛있게 나눠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날의 김치 맛을 아직도 나는 잊지 못하고 지금도 가끔 친구들을 만나면 이날 김치를 대화 주제로 꺼내기도 한다.
숙소에서 하루를 보내고 느즈막히 일어나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는 친구와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시 번다버그로 돌아오게 되었다.
친구가 있다는 것이 힘이되고 그리움이 되고 또 추억이 된다는 것을 느꼈던 브리즈번 여행이었다.
돌아오는 길은 아쉬웠지만 친구 공부가 끝이 나는 날, 그리고 우리의 농장 생활이 끝이 나는 날 다시 시드니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2009.06.20 ~ 21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