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봄이었지만 주말 한 낮은 여름처럼 뜨거웠다.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불었기 때문에 조금은 두터운 외투를 걸친 사람들은
손에 팔에 외투를 벗은 모습이 거추장스러워 보일 정도였다.
오랜만에 밀양 영남루에 들렸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누각이다.
내가 아주 어릴 때는 이렇게 잘 다듬어진 계단이 아니라 큰 돌을 이리저리 쌓아 만든 계단식 오르막이었는데
지금은 잘 가공된 돌계단과 비탈길이 보기 좋게 길을 만들어내고 있는 영남루 입구의 모습이다.
밀양 영남루 密陽 嶺南樓
경상남도 밀양시 내일동에 있는 누각으로, 구 객사( 舊 客舍)의 부속건물이다.
외지에서 온 손님을 머물게 하려고 만든 객사로 보기에는 규모가 작지 않고
밀양강을 품은 풍경 또한 아름답기로 소문이 났다.
고려 말에 창건을 했다가 조선 초에 재건을 했고,
1844년, 조선 후기에 다시 한번 재건을 하면서 고려보다는 조선시대 후기 건물의 특생을 잘 반영하고 있다.
외부에 공개된 공간으로, 입장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아 언제든 방문이 가능하고
입장료는 무료다.
대로변에서 입구의 계단을 오르면 이렇게 나지막한 언덕이 있는 넓은 터가 나타난다.
저기 영남루의 입구와 언덕 넘어 영남루나 시선에 들어온다.
영남루까지 오르지 않고 이곳 잔디밭에서 자유롭게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5월 따가운 봄햇살을 피해 나무 그늘 아래에서 휴식을 취하는 분들도 있었다.
밀양 영남루는 경남 진주의 촉석루, 평양 부벽루와 함께 한반도에 남아 있는 3대 누각으로 꼽힌다.
오래전부터 영남에서는 진주의 촉석루 보다 영남루를 더 알아줬던 것 같다.
그래서 영남루를 영남제일루(嶺南第一樓)라고도 하는데, 사실 지금에서는 영남루 보다 진주 촉석루가 더 유명하다.
아무래도 촉석루는 진주성이라는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 장소와 연관이 있기도 하고,
임진왜란 때 논개가 낙화(落花)한 곳으로 이름이 알려졌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누각의 본래 역할과 의미를 본다면
영남루는 조선 3대 누각이 틀림없으며, 영남에서 제일로 가는 누각도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잔디밭을 가로질러 다시 마주하는 계단길을 오르면 영남루 입구를 지날 수 있다.
내 기억에, 내가 어릴 때는 이곳이 마치 숲처럼 나무가 우거진 곳이었던 것 같았는데
오랜만에 찾은 영남루는 숲의 모습은 잃어버리고 넓은 공터나 공원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개단을 올라서면 이렇게 오른쪽으로 상당한 크기의 영남루를 바라볼 수 있다.
누각 앞에는 또 넓은 공터가 자리하고 있는데
내가 영남루 찾았던 날에는 다양한 행사를 함께 진행 중이어서,
마침 공터에서 민속놀이 체험이 진행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역시나 영남루 앞쪽으로 큰 나무들이 여러 그루 있었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은 그 나무들을 다 베어버렸는지, 조금은 밋밋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도착하기 얼마 전까지 이곳에서 사물놀이패가 한바탕 신나게 놀고 관객들과 춤도 추고 했었다고 했다.
조금만 일찍 왔다면 재밌는 구경을 했었을 텐데 조금 아쉬웠다.
그래도 구석구석 다양한 체험을 하고 있어서 보는 재미가 남아 있었다.
영남루, 영남명루(嶺南名樓)
오래된 현판이 영남루의 명성과 오래된 역사를 보여주고 있었다.
영남루는 직접 올라가 볼 수 있도록 개방관 누각이다.
입장료나 특별한 조건 없이 누구나 쉽게 누각에 올라가 볼 수 있도록 해뒀다.
우리나라의 보물이고 잘 보전해야 하는 문화재지만
이렇게 직접 이용하고 관리하는 것이 잘 보전하는 방법인 것 같다.
나무로 만들어진 누각이다 보니 물, 얼음, 아이스크림과 같은 음식은 가지고 오지 못하게 한다.
음식물을 잠시 보관대에 맡겨 두고 누각에서는 풍경과 누각의 매력에 집중하려는 배려라고 생각을 해야 한다.
계단을 오르면 신발을 벗고 누각에 직접 오를 수가 있다.
먼지가 따라올까 봐 한 사람 한 사람이 입장하고 떠나갈 때마다
관리하시는 분이 먼지를 없애기 위해 밀대로 발자국을 훔치고 있었다.
영남루는 1층을 공간으로 해서 2층에 마루를 얹은 구조이다.
그래서 한여름에도 땅에서 올라오는 지열을 피할 수 있게 했다.
또 나지막한 언덕 위에 누각을 지었기 때문에 사방에서 불어오는 강바람을 사정없이 얻어맞을 수 있는
시원한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
정면 5칸, 측면 4칸으로 실제로 보면 정말 큰 규모에 놀라게 된다.
선풍기가 에어컨을 따로 켠 것도 아닌데
불어오는 바람에 여성분들 머리가 크게 휘날리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정도로 누각으로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오는데, 한낮의 더위를 말끔히 씻을 만큼 충분히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바라보면
이렇게 밀양 시내를 가로지르는 밀양강을 시원하게 바라볼 수 있다.
아주 어렸을 때,
외할머니, 그리고 이모, 사촌 누나들과 이곳을 찾았던 기억이 있는데
그때는 저렇게 높은 아파트나 건물도 없어서 멀리까지 탁 트인 풍경이었던 곳이었다.
예전 풍경과 추억이 그립지만, 시간이 오래 지난 지금도 충분히 멋있고 시원한 풍경을 보여준다.
영남루 누각 위에서는 눕거나, 잠을 잘 수가 없다.
영남루가 파손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인데, 간단히 앉아서 바람을 맞는 것은 언제나 가능하게 했다.
조용히 바람을 맞고 있노라면 솔솔 쏟아지는 잠의 유혹을 이기기가 쉽지는 않다.
조금 전에 올라온 영남루 입구의 모습이 보였다.
그 옛날,
밀양에 귀한 손남이 오면 이렇게 높은 곳에서 밀양 시내를 바라봤을 것이다.
TV도, 영화도, 유튜브도,
넷플릭스도 틱톡도 없었던 그 옛날,
그 보다 더 즐거웠을 풍경을 가져다줬던 영남루였을 것이다.
천장에는 통풍을 하면서도 새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그물망을 설치해 뒀다.
새들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사방이 공개되어 있다 보니 새가 쉽게 날아들어 집을 짓거나 배설을 하는 경우 부식의 우려가 있어서 어쩔 수가 없나 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영남루를 다녀갔을까
유명한 사람들도 많이 다녀갔겠지?
체험행사를 하는 곳에 사람들이 줄을 많이 서 있었다.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니, 떡 먹으러 오라는 안내 멘트가 들려왔다.
무료로 떡을 나눠주고 있는 것 같았다.
영남루 여기저기에 걸려 있는 현판과 시문에 대한 설명도 확인할 수 있었다.
영남루와 한 걸음 더 가까워지는 기분이었다.
영남루 (하연, 1827년)
영남루는 낙동강 동쪽하늘에 있어
왕명 받기 전부터 명승지라 들었네
발 걷으면 달 오르고 바람이 들며
난간에 기대면 솔개 날고 물고기 뛴다
한 시내는 일천 뙈기들에 굽이치
두 골짜기는 일만 글의 숲을 나누었구나
한스럽다 강하의 침석을 깔지 못하니
어찌 홀로 서늘한 곳에 자리 펼치리
영남루 (이원, 1844년)
우뚝한 누각 영남 하늘에 높이 올려놓아서
십리의 빼어난 경치 눈앞에 다 보이네
고요한 낮 여울소리 베개 버리에 이어지
해 비끼자 솔 그림자 뜰 가에 떨어진다
농부의 바쁜 봄 일 마을마다 비 내리
들 객점엔 아침밥 짓느라 곳곳이 연기로다
지난날 선군께서 이곳을 지나셨는데
부끄럽다 소자가 다시 잔치여는 것이
영남루를 내려와 나도 줄을 서서 떡을 얻어먹었다.
직접 떡메를 쳐서 만든 시루떡이었다.
영남루에서 아직 열기가 남아 있는 갓 만든 시루떡을 먹으니 선비라도 된 것 같았다.
예전에는 영남루에서 뛰어놀다 돌아갔던 것 같다.
이번에는 영남루 말고도 주변을 구석구석 한 번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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