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 Sydney.
시드니를 떠나는 날 아침은 유난히 맑았다.
오늘 우리는 시드니에서 차를 몰아 번다버그까지 가기로 했다.
약 1,300km에 해당하는 거리를 차로 간다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는 큰 도전이었고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한국에서도 이렇게 장거리를 운전해본 적이 없었다.
더군다나 호주는 한국과는 운전대가 반대였고
호주 운전 면허증은 나만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나 혼자 운전을 해서 번다버그까지 가야 했다.
일정은 3박 4일을 잡고 이동을 하기로 했다.
같이 시드니에 있던 친구 한 명이, 농장이 아니라 영어공부를 위해 브리즈번으로 먼저 갔기 때문에
중간 목적지를 브리즈번으로 잡고 일정을 짰다.
브리즈번으로 가는 친구는 비행기로 이동을 했다
그렇게 건장한 남자 세 명과 많은 짐을 승용차 하나에 싣고
우리는 해가 뉘엇뉘엇 지는 오후 6시에 시드니를 떠났다.
처음으로 차를 타고 하버브릿지를 건너고 시드니 북쪽의 부자마을을 지나자
곧 주위는 낮은 주택과 넓은 들판이 보이는 길이 끝 없이 펼쳐졌다.
곧 해가 지고 사방은 어두어지는 바람에, 이제 믿을 곳은 네비게이션 뿐이었다.
시티에서 한국어가 되는 네비게이션을 차에 달기는 했는데, 작동이 미숙하기도 했고
마치 우리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자동차는 산길과 비포장길이 있는 길을 골라 우리를 인도했다.
시티를 벗어나면 가로등도 없고, 비포장길도 많다는 것을 시드니를 떠나고 오래 가지 않아 깨우쳤다.
그때 가까운 마을을 목적지로 하고 해가 떨어지기 전에 숙소를 정해 쉬었어야 했는데
우리는 젊은 객기로, 졸리기 전까지 차를 몰아 북으로 북으로 이동을 하기로 했다.
그러다 휴게소나 주유소가 나오면 주차장에 차를 대고 차박을 하자는 어리석지만 완벽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사건이 하나 터졌는데,
남자 셋과 각자의 1년치 짐을 가득 실은 차가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와중에 타이어 펑크가 나버린 것이었다.
조명은 없고, 사방이 조용한 상황에서
차창을 넘어 비포장길과 펑크난 타이어가 만들어내는 뭉그적거리는 소리는 엄청 무섭게 들렸었다.
우리는 처음엔 겁에 질려 이 모든 현실을 부정하기도 했었다.
차를 정차할 곳도 마땅치 않았다.
차에서 내렸다가는 이름 모를 날짐승에게 공격을 받을 것만 같은 길이 계속 이어졌다.
서행을 하며 타이어를 교체할 장소를 물색하던 중,
눈 앞에 작은 가로등불 하나와 30평 남직한, 바닥에 시멘트가 칠해진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다급히 차를 세우고 차 상태를 확인했다.
타이어가 바람이 빠질대로 빠져서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이대로 조금만 더 달렸더라면 큰일이 날 것 같았다.
트렁크에 있는 짐을 다 빼고, 임시 타이어로 교체를 하기로 했다.
하지만 한 번도 타이어를 갈아본적이 없었던 우리 세 얼간이는 그날 한 참을 타이어와 낑낑대며 싸움을 했다.
뺄 때는 잘 뺐는데, 새 타이어를 끼우는게 쉽지 않았다.
한참을 타이어가 잘 못 됐다며 싸우고 있는데,
우연히 바라본 하늘에서 믿을 수 없는 장관이 펼쳐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손만 뻗으면 한움큼 쥐어질 것만 같았던 별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던 것이었다.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별을, 그리고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 적이 있었을까.
한참이 지난 지금이지만, 나와 내 친구는 그날 그 사건,
그리고 그 공간과 냄새, 촉감을 잊지 못 한다.
그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서로 고민하며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봤었는데
그게 현재를 살아가는 나에게 참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예상치 못한 사건사고들을 겪으면서 조금씩 성장을 했었다는 것을 이제서야 느낀다.
그날 무사히 타이어를 바꾸고 가까운 마을로 가서 뒤늦게 하룻밤을 보냈지만
그때까지도 앞으로 어떤 사건사고가 펼쳐질까 상상조차 하지도 못 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는 얘기하지 못했지만
나에게는 일년에 단 하루 밖에 없는 2009년 나의 생일날 저녁이
그렇게 저물어 가고 있었다.
Good Bye, Sydney
2009.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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