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티를 가로질러 걸어 다시 하버브리지에 도착했다.
여기까지 오면 보통 오페라하우스로 향하겠지만, 오늘 목적지는 딱 여지까지다.
해가지는 시간 하버브리지에 조명이 들어오면서 은은히 빛났다.
8월의 겨울이었지만, 항구는 찬바람이 많지 않아 거닐기 좋았다.
오페라 하우스 앞 레스토랑은 아직 사람이 붐비지 않았다.
이제 막 해가 넘어가는 시티의 건물들이 하나 둘 조명을 밝히며 멋진 야경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어머니는 사진만 찍지 않으시고, 가끔 시간을 가지며 시드니를 눈으로 담으셨다.
사진을 추억으로 남기시고, 나머지 시간은 온전히 몸소 시드니를 담아가시려는 듯했다.
우리 어머니 참 멋지다.
삼각대 없이 핸드헬드 사진만 찍었다.
급한 마음에 애꿎은 셔터만 마구 눌러댔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릴수록 점점 사람이 늘어났다.
식당의 빈자리에는 금세 사람들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크루즈 시간을 기다리면서 야경을 구경하고 사진을 찍고 있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이 갑자기 몰려들기 시작하더니 반가운 한국어가 가까이서 들렸다.
아니, 형이 왜 거기서 나와!?
배우 홍석천이었다.
시드니에 어쩐 일이신지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유명 배우, 홍석천이었다.
빨리 줄을 서서 사진을 찍어야지!
사람이 적지 않았지만 한분 한분 사진을 다 찍어주셨다.
그리고 친절하게 대해주셨고, 웃으면서 대화도 해주셨다.
멀리 이국땅, 시드니에서 유명 배우를 만나서 기쁘고 신기했지만
무엇보다 어머니가 많이 좋아하셔서 나도 기분이 좋았다.
배우 홍석천을 만나고,
이제는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됐다.
서큘러 키에서 크루즈를 타고, 바다 위에서 저녁을 먹을 수 있는 디너 크루즈다.
크루즈라고 하기에는 배가 그렇게 크지는 않다.
시드니 앞바다를 떠 다니며 간단히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공간만 있는 배인 것 같았다.
미리 예약을 하고 출력해온 바우처로 티켓을 교환했다.
간단한 티켓이 귀엽게 생겼다.
나는 스테이크와 랍스터 메뉴가 포함되어 있는 상품으로 구매를 해뒀다.
시드니 캡틴 쿡 크루즈 디너 the Captain Cook Cruise Dinner, Sydney
디너 성인 : $99 (창가 업그레이드 추가 $30) / 2022년 기준
예약 : 시드니 하버 크루즈 홈페이지 (홈페이지는 비싸다. 바우처 판매하는 곳이 많으니 비교 후 저렴한 곳 고르기)
https://www.sydney-harbour-cruises.com/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사람들이 많았다.
예약하지 않고 왔다면 배를 타지 못하고, 저녁도 먹지 못할 정도였다.
나처럼 부모님과 함께 온 가족들이 많았고,
데이트를 즐기기 위한 모습도 보였다.
그리고 일부 사람들이 깔끔한 슈트 차림을 하고 와서 함께 배에 올랐다.
모습은 크루즈, 배였지만 고급 레스토랑을 찾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테이블이 깔끔히 세팅이 되어 있었다.
식전 빵이 놓여 있었고 메뉴판이 테이블 중앙에 있어, 미리 주문한 메인 외 추가로 음식을 고를 수 있었다.
앙트레 Entrée, 메인 코스 Main Course를 확인할 수 있는 메뉴
앙트레로 뭘 먹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나는 구운 송어를 주문했다.
메인은 이미 정해졌기 때문에, 앙트레만 따로 주문하고 식전 빵을 먹기 시작했다.
많이 걸었더니 배가 많이 고팠다.
식전 빵을 막 먹으려고 할 때쯤, 배가 조금씩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시드니 근안만 돌아다니며 저녁을 먹는 코스다.
이렇게 바다에서 오페라하우스를 보니 또 새로웠다.
이렇게 바다 위에서 시티 쪽도 바라볼 수 있었는데,
살랑살랑 일렁이는 배의 진동과 창 밖의 야경이 어울려서 묘한 분위기와 기분을 만들어 냈다.
내 앙트레, 전채요리가 준비가 됐다.
배 위에서 먹는 저녁이지만 고급 레스토랑에서 먹는 것처럼 깔끔하고 멋지게 플레이트가 되어 서빙이 되었다.
밥 맛이 없을 수가 없는 만찬이었다.
전채요이를 급하게 해치우고 다시 야경을 바라봤다.
사진을 안 흔들리게 찍을 수가 없는 조건이었다.
야경으로 빛은 부족했고, 크로즈는 쉴 새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식사 메뉴 외 음료 메뉴가 따로 있었는데,
배 위라고 간단한 음식과 음료만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던 게 미안해질 정도로 많은 메뉴가 있었다.
처음 제공받았던 화이트 와인이 있었는데,
앙트레로 모두 마셔버리고, 추가로 레드와인을 한잔 더 주문했다.
한식처럼 한 상 차려놓고 먹는 것이 아니었다.
오래 시간을 두고 배도 타고, 야경도 구경하면서, 코스대로 천천히 먹는 저녁 식사였다.
나는 오랜만에 어머니와 마주 앉아 참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나 어릴 때 모습들,
그리고 결혼하기 전 어머니의 생활방식과 가슴 한편에 묻어둔 여러 이야기들
나도 어머니로부터 처음 듣는 옛날 얘기들을 참 많이 들려주셨다.
그날 밤 나는 소녀 모습을 한 어머니의 모습을 참 많이 봤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잊지 말아야지, 다짐을 했다.
그리고 시간과 노력을 들여 더 자주 여행을 함께 하기로 다짐했다.
아, 근데 메인 디쉬가 좀 아쉬웠다.
내가 주문한 건 분명 스테이크와 랍스터였다.
큰 스테이크 한 접시에, 사이트로 랍스터가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스테이크는 애기 주먹만 했고,
랍스터는, 랍스터가 아니라 큰 새우를 반 갈라놓은 듯한 랍스터가 왔다.
메인이었지만 메인이 아닌 메인 디쉬가 왔다.
어머니와 헛웃음을 지으며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저녁을 먹어야 했다.
그래도 어머니와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어서 참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렇다고 안 먹은 건 아니다.
열심히 알뜰살뜰 살을 발라 맛있게, 끝까지 다 먹은 저녁이었다.
마지막으로 후식은 초코 치즈케이크와 딸기 아이스크림이 나왔다.
달달한 후식을 먹으니 또 금방 기분이 좋아졌다.
어머니도 어린아이처럼 초콜릿 케익을 포크로 덜어 맛있게 드셨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최근에도 어머니는 시드니의 모습, 그리고 이 크루즈 디너를 가끔씩 추억 삼아 이야기하고는 하신다.
시드니에서의 마지막 밤, 마지막 저녁식사
오랫동안 잊지 않고 기억해주셔서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드는 그런 시간과 추억이다.
레스토랑처럼 우리 테이블을 담당하는 직원분이 근처에서 우리 음식 서빙과 테이블 세팅을 계속 신경 써주셨다.
한국 식당과 달리, 식사 도중에도 계속해서 맛은 어떤지, 필요한 것은 없는지 물어봐 주셨고,
음식이 비워진 식기는 금방 자리로 와서 치워도 되는지를 물어봐 주셨다.
한국에서 사람이 있는 테이블에서 식기를 치우는 것은 ‘나가라는 의미인가?’ 싶지만,
호주에서, 또 서양권에서 테이블에서 식기를 치우고 계속 말을 걸어주는 것은 ‘내가 더 신경 쓰고 있다.’는 뜻이다.
Every things alright? 맛 괜찮나요?
Let me know if need anything! 필요한 것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Finished? 그릇 치워도 될까요
메인을 중간 정도 먹었을 때쯤,
이쁜 드레스를 입은 초대가수가 나와서 멋진 노래를 불러주셨다.
공연을 보면서 식사를 할 수가 있었는데,
노래만 부르지 않고 손님들과 대화도 하고 사진도 찍으면서 즐겁게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
저녁 6시부터 약 2시간 30분 정도를 배에 있었다.
저녁 8시 30분이 넘어서야 배가 접안을 했고, 식사를 마친 후 배에서 내릴 수 있었다.
메인이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그래도 비용 대비 괜찮은 저녁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배도 부르고 다시 어머니와 시티를 걸어서 호텔로 돌아갔다.
시드니에서의 마지막 밤을 서로 많이 아쉬워하며 멀지 않은 시간에 다시 시드니에 오자고 약속했다.
아니 근데
아쉬운 사람 맞냐며
너무 잘 걸으신다며..
숙소로 가는 발걸음이 가벼운 어머니
이렇게 시드니의 마지막 밤을 마무리했다.
시드니대학교를 구경하고, 브로드웨이 쇼핑몰에서 샀던 숄더 에코백
이쁘네
잘 산 것 같다.
2014.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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