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를 떠나기로 했다.
시드니에서만 1년의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농장으로 가서 90일 Tax Job으로 일을 하고 Second Visa를 받기로 친구들과 의견을 모았다.
첫 번째 조건은 2nd Visa를 받아 1년 더 호주에 머물자는 것이었지만
어느 농장으로 가서 어떤 일을 할지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 레스토랑에서 같이 일했던 한국인 동생이 번다버그(Bundaberg)농장에서 일을 하고 있어서 그쪽으로 가자는 얘기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었다.
오늘은 나 혼자만 쉬는 날이었다.
심란한 마음도 정리할 겸 혼자 시드니를 걸어보기로 했는데 오늘은 조금 멀리 가보기로 했다.
하버브릿지를 건너 노스 시드니(North Sydney)까지 목적지를 정하고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애플 스토어는 외관도 참 멋있다.
시티 한 복판에 이런 멋진 건물이 있다는 것은 참 멋진 일인데,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좌우앞뒤로 200년은 되어 보이는 오래된 유럽풍의 건물들이 즐비하기 때문에
어울리지 않는 듯하면서도 어울리는 통유리 건물의 애플 스토어다.
마틴플레이스(Martin Place)는 꽤 커다란 광장인데 여기서 매트릭스 영화를 촬영했다고 한다.
공간이 퍽 아늑하고 분위기가 있는데,날씨가 좋은 날에는 신혼부부가 사진촬영을 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주말에는 야외 공연도 많고 여러 행사도 진행이 되는 공간이다.
계속해서 노스 시드니를 향해 걸었다.
록스에서는 다양한 레스토랑과 상점들이 있고, 또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어트릭션이 많이 있다.
호주 원주민인 어보리진(Aborigine)이 전통악기인 디제리두(Didgeridoo)를 연주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런데오늘따라 어보리진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대신 인디오,혹은 남미에서 오신 것 같이 보이는 분들의 야외 연주를 볼 수 있었다.
록스 시장에서는 기념품이나 수공예품을 구경할 수 있는데,
짧지 않은 거리에 여러 상점들이 주말에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사지 않고 구경만 해도 재미가 있고 시간이 잘 갔다.
록스에서 계단을 올라 하버브릿지로 이동을 했다.
다리 아래에는 많은 불법주차 차량을 볼 수 있었다.
호주가 벌금이 참 무서운 나라인데,주말에는 록스 주변으로 나들이 나오는 분들이 많아서 차량도 많았는데
이런 불법 주차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이제 이 하버브릿지를 건너 북쪽으로 갈 예정이다.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는 서큘러키(Circular Quay)와 오페라하우스 풍경이 나쁘지 않다.
오페라하우스는 그 상징성 때문에 어디 어느 각도에서 바라봐도 참 멋있는 것 같다.
록스의 오래된 건물들과도 잘 어울린다.
하버브릿지를 걸어서 건너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꽤 긴 거리를 혼자 걸어서 건너는 게 외로울 것 같기도 하고 무서울 것 같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던 것 같다.
가까이에서 보니 정말 거대한 철근 구조물이다.
가운데로 차량과 옆으로 트레인이 함께 오가는 다리인데,규모가 어마어마 하다.
서큘러키와 시드니 시티뷰.
점점 시티를 멀리하고 노스 시드니로 이동한다.
다리를 건너는 중에 브릿지 클라이밍(Bridge Climbing)을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워낙 거대하고 큰 구조물이기 때문에 직접 걸어서 꼭대기까기 올라가는 액티비티를 경험할 수 있다.
가이드가 있고 안전고리가 있고 자신감만 있으면 된다지만,나는 무서워서 도전해 보지 않았다.
정말 한가로운 풍경이다.
니모를 찾아서(Finding Nemo, 2003)애니메이션에서 이곳이 나온다.
오페라하우스 앞에서 펼쳐지는 니모의 모험,참 재밌게 봤던 기억이 있다.
한참을 걸어 다리를 거의 다 건넜다.
다리의 끝은 곧장 노스 시드니 시내로 이어지는 대로가 된다.
똑 같은 시드니지만 다리를 건넌 시드니는 시드니 시티와는 다른 풍경이다.
건물이 그렇게 높지 않고 조금 더 여유가 느껴진다.
노스 시드니는 시드니에서도 유명한 부촌인데,
이곳에서 내 나라 한국의 아반떼를 만났다.
집 떠나면 고향 까마귀만 봐도 반갑다더니,눈에서 사라질 때까지 시선을 떼지 못하고 바라봤다.
제대로 찾아온 것 같다. Nth Sydney
확실히 건물이 낮고 여유가 느껴진다.
다리 북쪽 아래는 남쪽과는 또 다른 장면과 이야기가 있었다.
항구가 보이는 공원, 브래드 필드공원이다.
록스와 달리 큰 공원이 있었고,이미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공원을 즐기고 있었다.
늦은 오후,이렇게 여유를 즐기는 게 어떤 기분인지 나는 이때 정확히 경험하고 배울 수 있었다.
다급하게 쫓기며 살아가는 지금의 내가 돌이켜 떠올리고 싶은 기억과 추억들이다.
오늘 다리를 건너 북 시드니로 온 목적은,하버브릿지 북단,다리 밑에 있는 놀이공원,
루나파크(Luna Park)에 가기 위해서였다.
시드니의 놀이공원인데,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시티 가까운 곳에서 즐길 수 있는 놀이공원이었다.
루나파크에서 놀이기구를 신나게 타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그냥 날씨가 좋았고,마침 일은 없었다.
하버브릿지를 걸어서 건너고 싶었고,다리의 끝에는 여유로운 시드니 사람들과 놀이동산이 있었다.
오페라하우스나 서큘러키에서 이 루나파크 입구가 훤히 보이는데,
가까이에서 보는 루나파크의 입구는 좀 괴기스럽기까지 했다.
저 입으로 들어가면 또 어떤 세상이 펼쳐지는거야?
흠, 1년에 10만원?
나도 한 번 끊어볼까?
루나파크는 입장료는 따로 없었다.
공원처럼 원할 때면 언제든 입장이 가능했는데 놀이기구를 타려면 별도 표를 끊어서 타는 방식이었다.
연간 회원권이 10만원이라면,나쁘지 않을 것도 같았다.
내 키가 너무 작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놀이기구를 타기에는 나의 용기와 물리적인 키 모두 작디 작았다.
어디를 봐도 놀이공원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도록 잘 꾸며놨다.
쓰레기통은 삐에로가 담당이다.
2번 마차가 승리하는 게임이었다.
역시 놀이공원은 먹을 것이 빠질 수 없다.
살짝 더운 날씨에 아이스크림은 무더운 사막에서 만나는 오아시스 같다.
한 때 놀이공원에 가면 범퍼카를 많이 타고는 했었다.
시드니에서 범퍼카를 만나다니,너무 반가웠다.
호주 면허증도 있겠다,시동 한 번 걸어볼까 하는 충동이 크게 일었다.
하지만 구경만 하고 타보지는 않았다.
루나파크는 규모가 그렇게 크지는 않다.
하지만 이렇게 하버브릿지 아랫쪽으로 바다를 끼고 위치해 있고,
시드니의 많은 사람들이 찾고 즐기고 있었다.
꼭 에버랜드처럼 규모가 클 필요는 없다.
가족과 아이들과 함께 찾아 즐길 수 있으면 충분하다.
대관람차는 세계 공용어다.
저거 없으면 놀이공원으로 안 쳐주는 것도 국제법이다.
나는 이 벽화를 한 참을 서서 바라봤는데,
정말 크고 넓은 벽 한 켠에 커튼을 드리우고 들어오라고 나를 유혹하는 것 같은 착각이 있을 정도로
입체감이 살아 있는, 정말 잘 그려진 벽화였다.
몸을 좌우로 이동해가며 커튼 안에서 실제로 서커스가 일어나고 있는지를 살피기까지 했다.
나는 아직 동심이었다.
아직 나에게도 동심이 있는지를 살피고 있었다.
소녀 토르(Thorr)
사실 저 때 나는 토르를 알지 못했다.
이제 막 아이언맨 1편이 개봉을 하고 어벤저스의 서막을 여는 시점이었다.
아이들이 참 해맑에 웃는 모습을 보면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오늘 루나파크에 와서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곧 시드니를 떠나게 될텐데,이 기분을,이 느낌을 잊지 말자 다짐을 했다.
루나파크를 나오면서 입구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나중에 다시 만나면 괴상하게 나를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오페라하우스에서도 루나파크가 훤히 보이듯이,
루나파크에서도 오페라하우스가 멀지 않게 보인다.
둘이는 이렇게 계속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하버브릿지는 오작교처럼 검고 길고,또 둘을 이어주고 있다.
루나파크를 나와 하버브릿지 아래 잔디밭에 한참을 앉아 건너편 오페라하우스와 시드니 시티 풍경을 감상했다.
바로 다리를 건너면 뭔가 아쉬울 것 같았다.
나는 이 배경을 호주에 머무는 동안 내 노트북의 배경으로 사용했다.
오늘 이 기분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었고,
시드니에게 시드니를 떠나기로 했다는 미안함과,
또 20대 후반으로 가는 철길 같은 시간 상의 막연함이 있었다.
2009.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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