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없는 날이면 어김 없이 시드니를 걸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 아래 시드니를 걷는 다는 것은 나에게 최고의 행복이고 사치였다.
3월의 시드니는 계절로는 가을이었지만,아직 더위가 가시지 않았다.
사계절이 있다고는 하지만 시드니의 겨울은 우리네 늦가을 날씨와 비슷했
그렇기 때문에 여름이 길고 봄과 가을이 겨울을 밀어내고 여름에 가까이 있었다.
오늘은 시드니 시티에 있는 마이어(Myer)백화점을 가보기로 했다.
딱히 무언가를 살 마음은 아니었다.
가보지 않은 시드니 구석구석을 돌아다녀보자는 생각으로 길을 걸었다.
시드니에는 와퍼(Whopper)는 있지만,버거킹(Burger King)은 없다.
미국 햄버거 체인점인 버거킹이 영국령인 호주에서는 버거킹이 아니라 헝그리 잭스(Hungry Jacks)로 불리기 때문이다.
정확이 왜 그런지 알지는 못 했지만,
입헌군주제인 영국 본토에 버젓이 엘리자베스(Elizabeth II) 여왕이 있는데
햄버거 가게에서 왕(King)을 얘기할 수 없다는 뜻으로 알고 있었다.
미국의 버거킹이 호주에 진출할 당시,
호주에는 이미 버거킹이라는 레스토랑 상표가 등록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름을 바꿔야 했다는 얘기도 있다.
그런데 이름만 헝그리 잭스지,사실 메뉴는 버거킹의 햄버거 메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국과의 급여 차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호주에서의 햄버거는 저렴하게 느껴졌는데,
아침 저녁으로 입맛이 없을 때면 헝그리 잭스에 들려 와퍼세트를 자주 먹고는 했다.
거기다 음료로 무한리필이어서 나 같은 생계형 유학생에게는 저렴한 비용으로 더할 나위 없는 한끼 식사가 되어주었다.
여름에 시티를 걸을 때면 더위를 피해 시티홀 지하도를 이용하고는 했었는데,
이런 커다란 홍보물에 가끔 발걸음이 멈추고는 했다.
시선을 자극하는 광고물들이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는 했었는데,
나는 이때 광고가 가지는 엄청난 힘과 그 역할을 생각했었던 것 같다.
나에게 노출된 이런 옥외광고가 10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질 않으니,나에게는 참 잘 만들어진 광고물이었다.
마이어 백화점 앞에는 넓은 광장이 있는데,
호주의 젊은이들과 관광객이 모여 다양한 색깔과 모습들을 만들어내고는 했다.
길거리 광대와 악사들이 많이 있었는데,
이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있고 자유로움이 느껴졌었다.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모습을 거짓 없이 보여준다는 점에서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고 대단하기도 했다.
가끔 버스킹을 만나서 신나는 공연을 즐길 수도 있었는데,
어떤 악기든,어떤 언어의 노래든 상관없이 자유롭게 연주하고 부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공연이 끝날 때마다 경의를 표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때로는 이러한 성의의 표시가 그들에게는 생계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2009.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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