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이면 시드니에서 세계에서 가장 큰 동성애 축제가 열리는데, 시드니 마디그라 축제(Sydney Mardi Gras Parade)가 그것이다.
동성애라는 단어가 나에게는 생소한데, 그냥 동성애라는 말을 단어로 말하는 것이 왠지 모르게 조심스럽기까지 했다.
그들에 대한 나의 다른 시선이 있는 것은 아니다. 동성애, 혹은 성소수자라고 하는 사람들을 아직 가까이에서 대해본 적이 없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동성애 축제가 시드니에서 열린다니, 또 그 규모가 세계 최대 규모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축제 마지막날 시드니를 가로지르는 긴 퍼레이드 행렬인데,
이 축제를 위해 도시가 통제되고 퍼레이드 한참 전부터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관광객의 눈치싸움이 시작된다.
오늘 일이 없었던 나와 친구 한 명은 처음에 시드니 시티나 좀 걸을 생각이었다.
킹스크로스를 걸으면서, 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에 놀라기도 했다.
남반구 최대의 환락가라는 말이 있을 정도인데, 낮에 킹스크로스를 걸으면 여느 상점가와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한가롭게 골목 여기저기를 거닐며 커피도 마시고 앉아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그리고 가져간 사진기로 시드니 풍경을 열심히 담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인파가 많이 몰려 있는 거리를 지나게 되었는데, 우리는 생각지도 않게 마디그라 퍼레이드의 길과 마주하게 되었다.
우연히 만나게 되었지만, 딱히 일정이 없던 나와 친구는 이 축제의 마지막 퍼레이드를 구경하기로 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자리를 선점하고 있었고,
핑크색의 의상과 장식들, 심지어 핑크색의 호주 국기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동성애를 상징하는 색깔이 핑크와 무지개색이라는 것을 이날 처음 알았다.
말 그대로 축제였다. 많은 사람들이 사진도 찍고 일행과 대화를 하며 퍼레이드를 기다리고 있었다.
꽤 많은 시간을 기다렸지만 누구 하나 불평을 하지 않았다.
기다리는 시간마저도 축제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도 친구와 시디니에서의 생활과 아직은 불투명한 우리의 미래에 대해서 고민과 걱정과 불평을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냈다.
시드니에 머물면서 일만하고 한 주 한 주 살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이렇게 큰 축제를 즐기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었다.
그래서 재미도 있었고 어떤 축제일까 기대되고 설레기도 했다.
해가 뉘엇뉘엇 지기 시작할 때쯤, 퍼레이드를 시작하려는 모습이 보였다.
가장 먼저 모습을 보인건 잘 짜인 퍼레이드 행렬이 아닌, 여장을 곱게 한 한 사람의 여장남자였다.
처음에는 축제를 알리기 위해 미녀가 나와 ‘이제 축제 시작이에요!’를 알리는 것으로 보였다.
당연하게 나는 이 축제가 처음이었고, 성소수자를 눈의로 처음 마주했다.
하지만 그가 그녀라는 얘기를 주위에서 들었다.
그리고 그녀를 봤을 때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성소수자라고는 했는데 눈에 보인 것은 그냥 아름다운 여자 한 분이 퍼레이드를 즐기며 자유롭게 사진을 찍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성애에 대한 내 인식과 관념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녀의 당당한 모습에 크게 놀랬고, 또 함께하는 관광객들 또한 환호와 응원을 보내고 있어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그냥 있는 그대로를 받아 들이고 받아 주고 있었다.
그녀가 한바탕 분위기를 띄우고 사라진 지 오래지 않아 본격적인 퍼레이드가 시작되었다.
퍼레이드라고 해서 꼭 오와 열을 맞춘 행렬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퍼레이드를 참가한 모든 성소수자들은 자유롭게 길을 따러 걷고 뛰고 춤추고 노래 불렀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관광객과 어울려 노래하고 함께 사진도 찍으며 축제를 즐겼다.
이번 마디그라 축제를 통해 그들이 어떤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인지 간접적으로나마 체감을 할 수 있었다.
축제가 있기 전에, 그리고 이 축제의 이면에는 소외되고 고통 받는 그들이 있다는 점이었는데,
오늘 이렇게 밝게 웃고 춤추는 것이 그동안 갖혀 있던 그들의 정체성이 아니었을까 싶다.
일 년에 단 하루, 오늘만큼은 맘껏 웃고 떠들 수 있는 시간이 되는 것이었다.
퍼레이드에 성소수자들만 참여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와 관련된 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함께 퍼레이드에 참여해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정말 소수자가 아니라 대중의 일부가 되어서 모두가 함께하는 축제를 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세계적인 축제라는 이름에 걸맞게, 전 세계에서 찾아온 동성애자들도 퍼레이드에 참여했다.
축제 참가자와 장비들의 규모가 엄청났었는데,
참여는 둘째치고, 이런 소품들과 차량은 어떻게 다 준비를 했을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엄청 많은 인파와 차량의 행렬이 끝도 없이 이어졌는데, 그 시작은 어디고 또 끝에 가서 이 많은 인파와 여러 장비들이 어디로 가는 것인지도 궁금했다.
퍼레이드 시작을 알렸던 그녀가 내 앞에 다시 나타났다.
한 바퀴를 돌아 다시 행렬에 스며든 것 같았다.
그녀의 손에는 카메라가 쥐어져 있었는데, 그녀의 눈에는 오늘의 퍼레이드가 어떻게 남겨지고 추억되고 있을까.
그들은 모두가 밝고 즐겁고 쾌활했다.
보는 내내 오히려 그 에너지를 내가 맘껏 얻어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이날 이후로 동성애에 대한 나의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는데,
마디그라 퍼레이드를 보지 않았었다면 아직도 동성애라는 단어를 부정적으로만 생각했을 것이다.
있는 그대로 그들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았다.
퍼레이드가 끝이나고 나서는 바리케이트를 걷고 관광객과 그들이 함께 어울리기도 했다.
모두가 친구가 됐고, 그들도 우리의 일부라는 것을 몸소 보여줬다.
여행을 더 자주, 많이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언제 어디에서 어떤 경험으로 또 나의 생각이 바뀌고 성장하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여행 순간순간 일어나는 일에 대해 겸허히 받아들이고,
또 만나는 모든 사람과의 인연을 소중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2009.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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