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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에서 마지막 날 아침
호텔 조식을 어김 없이 든든히 챙겨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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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조식은 매일매일 메뉴가 조금씩 달라지면서도 음식 하나하나가 정말 맛이 좋아서 만족스러웠다.
무엇보다 한국에서는 불가능한, 10월에 먹는 수박이 엄청 달고 맛있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내가 좋아하는 수박을 또 한동안 먹지 못 할테니
하노이에서의 마지막 호텔 조식은 밥보다 수박을 더 많이 챙겨 먹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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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체크아웃을 하려는데
방을 점검하러 오신 직원 분이 물 값을 따로 계산해야 한다면 인보이스를 작성해 주셨다.
냉장고에 있는 시원한 물은 무료가 아니고 따로 값을 매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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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파타야 호텔에서 생수 값 지불하기]
예전 태국 파타야의 하드록호텔에서도 동일하게 냉장고에 있는 물을 마셨다가 생수 값을 따로 지불했는데
여기서도 마찬가지였다.
2병에 36,000동(1,800원)이 적힌 인보이스를 받아 들고 체크아웃을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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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3일을 묵었던 호텔 방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아쉬움에 여러 장의 사진을 남겼다.
첫날 체크인을 하고 방에 왔을 때 예고 없이 소나기가 쏟아져 내 발을 묶었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게 3일 전과 오늘을 비교하며 하노이에서의 3일이 쏜 살 같이 빠르게 지나간 것을 체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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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호텔과 소나기 내리는 수영장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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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간 머문 호텔 방은 둘이 머물기에는 너무나도 풍족한 방이었다.
공간도 너무나 넓었고 에어컨 상태가 좋아서 방 안은 늘 쾌적했다.
바닥에 깔린 카펫의 보라색과 무늬가 조금 맘에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킹침대 2대를 흔쾌히 내어주었던 인심 좋은 아미호텔(Army Hotel)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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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아웃 할 때 생수 값이 적힌 인보이스를 같이 내밀어 생수 값을 지불했다.
보통 체크아웃할 때면 키를 반납하는 것으로 빠르게 호텔 체크아웃이 가능한데
아미호텔은 생수 값을 지불하는 것 외에도 몇 가지 서류를 정리하느라 시간이 조금 더 소요되었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너무나 친절했던 호텔 직원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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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아웃을 하고는 캐리어는 호텔에 잠시 맡겨 놨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는 저녁 늦은 시간에 있었기 때문에 낮 동안 하노이를 가볍게 둘러보고 싶었다.
호텔에는 짐을 보관하는 창고가 따로 있을 정도로 나의 부탁에 충분히 대비가 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덕분에 마음 놓고 마지막 하노이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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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아웃을 하고 호텔을 나서는데
호텔 바로 앞에 많은 여성들이 꽃을 들고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갑자기 많은 인파가 모여 있는 모습에 나는 잠시 어리둥절하면서도, 뭔가 생기 있고 활발한 모습에 덩달아 신이 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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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에 여고나 여대가 있어서 그곳 학생들이 어떤 행사에 참석을 했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오늘은 일요일이었기 때문에 학교 졸업식이나 행사가 있지는 않았을텐데 어떤 이유로 이렇게 모였을까 궁금했다.
결국 그 이유는 찾지 못 했지만 그래도 활기찬 하노이의 아침을 경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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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꽃을 든 소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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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에서 마지막 투어에 나선 나와 선배를 반갑게 배웅해주는 것이라 생각을 하기로 했다.
이른 아침, 꽃과 밝은 모습의 사람들을 보니 그런 맑은 모습과 에너지가 나에게도 전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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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는 베트남의 수도 답게 정말 많은 사람과 정돈되지 않은 오토바이, 그리고 차량 행렬을 마주해야 했는데
그 속에도 그들만의 규칙이 있고 방식이 있었으며, 또 이렇게 밝고 친절한 하노이 사람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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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앞에서 그랩을 불러 오늘의 첫 번째 목적지로 이동을 했다.
하노이에서 마지막날, 오늘의 첫 번째 일정은
하노이에 있는 북한식당에 가서 평양냉면을 맛 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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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은 1945년 이후, 그리고 1975년 통일이 된 이후에도 계속 공산국가 체제를 유지하는 나라였
북한, 중국, 그리고 쿠바와 라오스까지, 몇 남지 않은 공산국가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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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모든 공산국가와 친하게 지내는 것은 아닌데
그나마 북한과는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보니, 베트남의 주요 도시에는 북한이 직접 파견한 북한 사람들로 북한식당이 운영되고 있었
그곳을 방문한다면 실제 북한음식을 맛보며 북한사람과 대화를 해볼 수 있는 경험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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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전 러시아를 여행하면서 처음 북한식당을 방문했던 기억이 있다.
처음 북한식당에 들어서며 느꼈던 두근거림과 설레이던 기억,
북한 사람이 어딘가 친숙하고 익숙한 모습이어서 식당에 머무는 동안 어쩐지 편안했던 나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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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북한식당, ‘평양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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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모스크바’ 북한식당, ‘고려’]
러시아 블라디보스톡과 모스크바에 있는 북한식당을 찾았을 때는
나 혼자 방문을 했기 때문에 식사를 하면서 딱히 대화를 나눌 사람이 없었는데
그래서 몇 마디 주고 받지 않은 북한 사람과의 대화가 오랫 동안 기억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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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을 방문한 다른 손님들은 아주 편안하게 자기 일행과 대화도 나누고 북한 직원들과도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하는 모습이
또 나에게는 적잖이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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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에 있는 북한식당은 하노이 시내에서 거리가 제법 떨어져 있었다.
그랩을 타고도 30분 정도를 이동해야 닿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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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그랩을 내려 오랜만에 북한식당을 마주하니
붉은색 외관에 선명하게 적힌 한글, ‘고려식당’이라는 이름에서 약간 설레이면서도 나는 다시 조금은 긴장감을 느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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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식당(Nha Hang Koryo)’
(* 2025년 현재는 직원들이 북한으로 귀국하고 식당은 폐업을 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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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에 있던 북한식당 이름이 ‘고려’ 였는데, 어찌 보면 그 식당과 이름이 같았다.
다만 하노이의 ‘고려식당’이 한국식으로 뒤에 ‘식당’을 붙여 조금 더 친숙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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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면 한반도의 오래된 국가 ‘고구려’와 ‘고려’의 역사를 같이 공유하는, 우리는 한민족이다는 생각이 다시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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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식당을 들어설 때는 조금 긴장을 해야 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북한식당을 방문한다는 반가움을 안고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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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고 들어선 식당에는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식당 내부는 4~6명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나란히 놓여 있어, 일반 음식점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러시아에서 방문했던 북한식당과 비교했을 때 하노이 북한식당은 규모가 작은 편이었다.
안쪽으로 더 깊이, 그리고 2층에도 공간이 있어 보였는데 내부로 조금 더 들어가려다가
뒤늦게 우리의 방문을 알아차린 직원이 친절하게 입구쪽 테이블로 안내를 해서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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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 20분
아침이라고 하기에는 많이 늦었
점심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일렀다.
식당 안에는 손님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우리를 마주한 북한직원도 손님이 찾을 시간이 아닌 시간에 방문한 우리가 조금은 의아해 했을 것 같다.
그래도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고 친절히 자리까지 안내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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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에는 1명의 직원이 손님을 응대하는 것 같았다.
그 직원과는 자리를 안내 받은 후 또 메뉴를 보며 어떤 것을 먹으면 좋을지에 대해 적당히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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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냉면도 있지만 옥류관 쟁반냉면도 맛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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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들어본 적 있는 그 특유의 평양식 억양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대화를 하고 소통하는데는 전혀 어려움이 없는 진짜 북한사람, 그리고 한국어였다.
우리는 직원이 추천하는 옥류관 쟁반냉면을 주문하면서 대동강 맥주도 같이 주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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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오셨습니까?”
“그러면 하노이에는 언제 오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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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억양을 충분히 묻혀 직원이 우리에게 먼저 질문을 해주셨다.
나는 처음의 긴장했던 마음을 꼭꼭 감추고 질문에 짧게 대답을 했다.
이런 모습에 오히려 그 직원은 익숙하다는 듯 자연스레 다음 대화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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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렇지만 이렇게 북한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참 신기한 경험이다.
몇 마디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냥 한국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또 같은 음식과 문화를 공유한다는 것 때문에 뭔가 뭉클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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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를 잔에 따라 마시는데 간단한 반찬을 내어주셨다.
미역줄기 무침과 숙주나물 무침, 그리고 오이를 초장에 찍어 먹을 수 있게 접시에 담아 내어주셨다.
이렇게 보면 영낙 없는 한식당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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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갑자기 자기가 키우고 있는 고양이를 보여주겠다며 직원이 고양이 한 마리를 데리고 홀로 나타났다.
고양이의 등장으로 마지막 남은 내 경계심과 긴장감은 봄날 눈 녹듯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고양이를 사이에 두고 북한 사람과 자연스레 더 많은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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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이름이 뭐라고 했는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테이블 기둥에 줄을 묶어 놓았더니 익숙한듯 그 자리에 털석 자리를 잡고 앉아 나를 꿈벅 쳐다보던, 엄청 얌전하고 이쁜 고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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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쟁반냉면이 나왔는데 냉면과 곁들여 먹기 위해 함께 주문한 만두도 같이 나왔다.
우리는 각자 ‘옥류관 쟁반냉면’ 하나씩을 시켰는데, 양이 생각보다 많았다.
이럴 줄 모르고 만두를 추가 했는데 만두도 양이 많아서 금세 테이블이 푸짐해졌다.
쟁반냉면은 일반 평양냉면 보다 좀 더 얕고 넓은 쟁반 같은 그릇에 냉면을 담에 고기와 오이를 얹은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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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쟁반냉면을 맛 보기 전에 지금껏 내가 먹어 봤던 평양냉면의 맛을 떠올려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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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먹어본 평양냉면 중에 기억에 남는 평양냉면은
‘을지면옥’의 평양냉면이다.
지금은 재개발로 가게가 이전하고 건물도 현대식으로 바뀌었지만
처음 을지로의 예전 그 오래된 건물을 올라서던 기억과, 그곳에서 맛봤던 시큼하면서도 냉냉했던 평양냉면 맛을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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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맛 본 평양냉면 중 으뜸은
‘블라디보스토크 평양관’에서 먹었던 평양냉면의 맛인데
처음 북한사람을 만난다는 긴장과 설레임도 있었지만
을지면옥에서 맛 봤던 그 맛과 거의 비슷하면서도 조금 더 닝닝하고 슴슴한 맛이 있던 평양냉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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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면에서 이번에 맛 본 고려식당의 평양냉면은 조금은 실망스러운 맛이었다.
아무래도 더운 날씨의 하노이에서 북한의 시원한 냉면 맛을 낸다는게 조금은 어려웠던 것일까
쟁반 속에 담긴 면이 젓가락을 몇 번 휘저어도 제대로 풀리지가 않았
또 앞선 몇 번의 경험으로 평양냉면 맛의 기준을 한껏 올려둔 내 입에는 오히려 단 맛이 강하고 닝닝하거나 슴슴한 맛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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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쉽게 맛 볼 수 없는 평양냉면이었기 때문에 천천히, 그리고 ‘맛있게’ 냉면을 다 먹어 없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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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식사를 하는 동안 이른 점심을 먹기 위해 옆테이블에도 손님이 찾아 왔다.
자주 이 식당을 찾는 한국사람들로 보였다.
우리를 친절히 안내했던 직원도 그 손님들이 낯이 익은지 또 친절하게 손님을 맞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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얌전한 고양이는 전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가지 않고, 홀 가운데를 버젓이 자리 잡고 앉아 얌전히 TV를 보는 듯 했다.
식당 안에 있는 TV에는 북한 선전용 영상이 반복적으로 흐르고 있었는데 고양이는 그런 TV 속 영상이 익숙한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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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식당 안 고양이에 시선을 떼지 못 하고 관심을 계속 보내고 있으니
직원이 내 테이블 위에 고양이를 번쩍 들어다 놓고는 직접 만져봐도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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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당돌하고 적극적인 북한 사람이었다.
내가 고양이를 품에 안고 사진을 찍으니 ‘북한 사람’이 내 옆에 멀뚱이 서서 그런 나를 무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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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식당을 방문할 때 평양냉면을 먹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우선이었지만
그와 함께 북한 사람을 직접 만나고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식당에 머무는 동안 약간의 긴장감과 두려움으로 생각보다 북한 사람과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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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한국에 돌아와서 우연히 보게 된 어느 여행 유튜버의 한 영상을 통해 이곳 고려식당 모습을 다시 만날 수 있었는데
내가 방문했던 시기와 비슷한 시기에 여기 ‘고려식당’을 방문했던 영상을 만들어 올린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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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식당, 그리고 우리를 친절히 안내했던 그 북한 직원과 자연스럽게 대화도 하고 농담도 주고 받는 모습에서
왜 우리는 저렇게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지 못 했을까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그 영상 속, 나에게 고양이를 안겨주었던 북한 사람도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영상을 다 보고 나니 왠지 가슴 속이 조금 먹먹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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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스스로 만든 괜한 선입견과 편견 때문에
북한 사람을 아무렇게나 평가하고 없던 벽도 만들어 나 혼자 거리를 두려한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그 시간들을 둘러보게 되고 반성하게 되는 유튜브 영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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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여행을 다녀오고 난 후, 나는 최근 뉴스에서
북한 내부 결정으로 인해 해외에서 영업 중인 북한식당을 모두 폐쇄하고 그곳에서 근무하는 북한 사람을 모두 북한으로 귀국시켰다는 뉴스를 봤다.
베트남에서 영업 중이던 북한식당도 해당이 되었는데, 실제로 구글에 식당을 검색해보니 하노이의 ‘고려식당’이 ‘폐업’으로 안내가 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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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이 폐업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괜히 그 때 그 북한 직원의 따스한 미소가 다시 떠오르면서 짧게 나누었던 대화가 머릿속을 빙빙 스쳐 지나갔다.
그 때 조금은 긴장을 놓고 따스하게 대화를 나눠봤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어디에 있든 그 직원, 친절했던 ‘북한 사람’이 건강히 잘 지내기를 바라는 안부를 혼잣말로 남겨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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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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